인권
[탄핵 후폭풍, 세대갈등①] “싸움날라, 朴이야기 금기”…부자사이도 갈라놨다
뉴스종합| 2017-03-14 10:01
-탄핵 찬반 의견차로 ‘가정불화’
-딸바보 아빠도 “탄핵무효” 역정
-젊은층ㆍ노인층 대립 갈등증폭

[헤럴드경제=신동윤ㆍ박로명 기자] #1.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두고 경북 의성에 살고 있는 송현범(86ㆍ가명) 씨 가족은 세대별로 입장이 확연하게 갈라졌다. 평소 화목하기로 유명한 집안이지만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세대간 의견이 하늘과 땅차이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몸소 겪었고, 1970년대부터 면내 여당 조직을 맡아 20여년간 활동해왔던 송 씨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과한 처사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혀왔다. 60대에 접어든 송 씨의 첫째, 둘째 아들은 송 씨의 의견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50대 중반인 막내 아들을 비롯해 손자들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사법 처리를 지지하며 의견 충돌이 발생했다. 심지어 손자들 가운데선 야당 당원도 있었다. 가장 최근 모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설 연휴엔 술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커다란 의견차를 보이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2. 서울 강남에 사는 양효주(28ㆍ여ㆍ가명) 씨는 지금껏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양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관련 글을 올렸고, 이를 본 양 씨의 아버지가 “이런 글 잘 못 올리면 밖에 나가 큰일나는 수가 있다. 당장 지우라”며 역정을 냈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의 행동에 대해 관대하기만 하던 아버지였기에 정치적 성향 때문에 처음 발생한 갈등은 양 씨에겐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10일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12일 삼성동 자택으로 퇴거했을 때도 양 씨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느라 집에서 마음껏 좋아하는 티를 낼 수 없었다. 양 씨는 “아버지라면 마음속으로는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 태극기를 수십번도 들고 나가셨을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여전히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집안에서 관련 이야기에 대해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지 하루 만인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모이자! 광화문으로! 촛불 승리를 위한 20차 범국민행동의 날’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최근 실시한 각종 선거에서는 ‘세대 간 갈등’이 과거 고질병으로 지적되던 ‘지역감정’보다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세대 간 갈등 양상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있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 역시 이 같은 세대갈등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11~12일 이틀간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19세 이상 전국 성인 1013명을 대상으로 탄핵 인용 관련 여론조사를 한 결과 20대는 99.4%, 30대는 95%, 40대는 93%가 탄핵 인용이 적절했다고 응답하는 등 대다수가 박 전 대통령 파면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에 비해 50대는 78.7%, 60대는 65.5%만이 박 전 대통령 파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세대 간 인식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연령별 분화가 현실 속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현상이 바로 50대 후반 이상의 고연령층이 주요 참가자를 구성했던 탄핵반대 집회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헌재에서 최종 결정된 직후인 10일 오후엔 ‘젋다’는 이유만으로 탄핵반대 시위 현장에서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최종결정이 임박한 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과 반대하는 시민들이 나와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한 전문가는 연령대별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가 세대별 차이와 갈등의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층은 이번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의 문제들을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세력에 대한 법적 단죄의 의미로 받아들였다”며 “반면, 60대 이상 고연령층은 근대화에 참여했던 본인의 기억과 감정을 이입했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과거 세대들에 대한 공격이자 부정으로 받아들였던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도 이 같은 세대간 갈등을 불러왔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60대 이상 고연령층은 대통령을 군주제의 왕에 대입해 인식하고, 이로부터 나오는 권위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40대는 독재체제에 직접 저항하며 민주화를 이뤘던 세대고, 20~30대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경험하며 자의식이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삶이 익숙한 세대”라고 분석했다. 이어 “민주주의에 대한 세대 간 간극이 큰 한국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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