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광클도 무용지물’…워킹맘 울리는 ‘방과후학교’ 수강전쟁
뉴스종합| 2017-03-16 10:01
-온라인 접수…인기 과목 쏠림현상
-수급불균형ㆍ시스템 등 문제 발생
-워킹맘ㆍ온라인 약자 등에겐 불리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서울 성북구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53) 씨의 가족들은 지난 13일 저녁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 발단은 오후 11시로 예정됐던 고교생 아들의 국ㆍ영ㆍ수 방과후학교 신청.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 수강신청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시간에 맞춰 접속했는데, 정각보다 1분가량 늦게 접속한 탓에 수강을 원했던 과목들이 순식간에 마감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이 씨의 아내는 자기 일을 제대로 안챙긴다며 아들을 혼내 모자간에 말다툼이 벌어졌고 “자기 일인데 신경 안쓰니 이렇게 됐다”며 쏘아붙인 아내의 말에 이 씨가 함께 목소리를 높여 한밤중 소동이 벌어졌다. 이 씨는 “아이 같은반 친구들 가운데선 방과후학교 수강신청을 위해 초고속인터넷망이 구축된 집근처 PC방까지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게 정상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매년 학기 초 방과후학교 접수 기간이면 학교들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해당 기간만 되면 전국 일부 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수강신청을 둘러싼 ‘전쟁’이 펼쳐진다.

정부는 사교육 수요를 학교에서 흡수한다는 이유에서도 방과후학교 정책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지난 14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초ㆍ중ㆍ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방과후학교에 참여한 경우 1인당 연간 사교육비 절감효과는 초등 45만7000원, 중학교 14만4000원, 일반고는 26만2000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헤럴드경제DB]

문제는 학생ㆍ학부모들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 때문에 방과후학교를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매년 학부모들에게 수요를 조사하고 있지만, 교사 수급 문제 등을 고려하면 역부족이란게 일선 학교의 푸념이다. 서울 송파구 한 중학교의 방과후학교 담당교사는 “일선 학교에 배치되는 강사 수급 사정에 따라 방과후학교를 개설하다보니 학부모들이 100% 만족할 수준으로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근본 원인은 예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방과후학교 사업은 2008년 지방 이양이 결정돼 교육부는 각 시도에 교부하는 보통교부금에 방과후 예산을 포함해 내려보내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난해 학교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조사한 결과 각 시도에 내려보낸 보통교부금 대비 실제 방과후 예산 편성률은 17개 시도 평균 54%에 그쳤다. 여기에 시도 교육청들은 누리과정 편성을 둘러싸고 정부와 시도가 대립한 것처럼 방과후, 돌봄교실 예산 역시 정부에서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스템상의 허점도 지속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인 ‘나이스(NEIS)’의 보안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서울 일부 학교에서 접속조차 안돼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문자메시지 선착순 접수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학교들의 경우엔 일부 인기과목에 신청 희망자가 몰리는 통에 온 가족이 신청 시간만 되면 둘러앉아 핸드폰에 매달려 일제히 문제를 날리는 등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 노원구 한 초등학교 교사는 “몇 해 전부터 교육부에서 나이스를 이용해 신청을 받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우리 학교에선 온라인 활용 능력이 뒤떨어지는 조손가정 등이 많고 불편한 점이 많아 오프라인 신청을 활용 중이다. 불편한 전산시스템 대신 기존 오프라인 신청 방식을 고수하는 학교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청자가 많은 인기 프로그램도 선착순 대신 원하는 모든 사람의 신청을 받아 추첨하는 방식을 활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맞벌이 가정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 자녀를 둔 ‘워킹맘’ 이모(38ㆍ여) 씨는 “아이와 친한 같은반 아이 엄마에게 물어보니 전업 주부들은 서로 모여 방과후학교 수강신청 관련한 작전도 짜고 정보도 교환한다고 하더라”며 “직장을 다니는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방과후학교에 아이를 맡겨야 오후 시간에 마음놓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신청에 실패했으니 붕 뜬 시간을 학원 스케줄로 짜서 돌려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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