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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10명 중 9명 “정책 반하면 인사 불이익 우려”
뉴스종합| 2017-03-27 11:15
서울고법 판사, 전국판사 설문
“법관 관료화가 문제의 근원”
이종수·강용승 법학전문대교수
美·獨 수평적 사법구조 사례
대법원장 집중 권력 분산 강조


법관 인사제도 개혁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에 대한 질타와 함께 법원의 관료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법원 내 판사들의 최대 학술모임으로 꼽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회장 이진만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25일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 인사제도의 모색’이라는 이름으로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과 공동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영훈(43ㆍ사법연수원 30기)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지난 2월9일부터 28일까지 전국 판사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에 응한 501명 중 91.6%는 ‘법관들이 소속 법원장의 권한을 의식하느냐’는 설문에 “의식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특히 ‘대법원장이나 소속 법원장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 표현을 해도 보직과 인사평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명제에 대해 88.3%가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해 상당수의 판사들이 ‘윗선’ 눈치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심 판례에 반하는 판결을 한 법관이 보직이나 평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명제에 대해서도 45.3%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판사는 “법관들이 이런 불이익을 걱정한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법관의 관료화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민주적으로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우리나라처럼 대법원장이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드물다. 설령 사법부는 독립됐을지 몰라도 개별 법관은 독립되지 못했다”며 “이는 인사에 그치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시민의 권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독일은 행정부와 의회, 법관 대표기구가 함께 참여해 법관 인사가 이뤄진다”며 지금처럼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권이 분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용승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사법부의 수직적 서열화의 문제를 지적했다. 강 교수는 “미국은 대법관과 초임 지방법원 판사의 연봉에 큰 차이가 없다. 승진이나 호봉의 개념도 없다”며 “시니어 판사에게 어느 정도 예의만 갖출 뿐 판사들 사이에 서열이 없고, 법원과 법원 간에도 계급이 없이 수평적이다”고 했다.

앞서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행사를 축소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에 휩싸였다. 이달 17일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인복 전 대법관(현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을 위원장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2011년 대법원 산하 전문분야 연구회 중 하나로 발족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현재 480여명의 판사들이 가입해 있다. 1ㆍ2대 회장을 지낸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도 이날 참석해 “법관 독립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선 법관 개인의 의지를 고양하고, 법관이 내외적으로 간섭을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판사는 “이번 설문조사를 두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말을 노린 공격이라고 하는데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양 대법원장 임기 초반부터 인사제도를 두고 토론을 계속 해왔다”며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 법관들이 충분히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길 바라며 이번 발표를 준비하고 설문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김현일 이유정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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