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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 읽어주는 기자] 아시아 최고 부자의 ‘촉’에도 맞고 틀린 게 있더라
뉴스종합| 2017-04-10 10:28
◇ 슈퍼리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더 이루고 싶은 것들이 남았을까.

이들의 ‘생각’은 자서전에, 평전에 차곡히 담겨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세계의 부호들이 책을 냅니다. 자서전을 쓰거나, 전문작가를 기용해 평전을 냅니다. 소설이나 시집을 발표하는 부호들도 있습니다.

그런 슈퍼리치를 대신 읽어 드립니다. ‘슈퍼리치 읽어주는 기자’ 연재를 시작합니다.

[SUPERICH=이세진 기자] 미국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빌 게이츠다.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일궈놓은 사람인 만큼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미국보다 인구가 4배나 많고 경제성장 잠재력이 큰 중국의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알리바바의 마윈? 틀렸다. 생각보다 그의 이름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왕젠린(王建林ㆍ63),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업체로 알려진 다롄완다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왕젠린은 4월 기준 314억달러(35조6264억원ㆍ포브스) 자산을 일궈냈다. 중국 수도 베이징 중심가에 엄청난 넓이와 높이로 우뚝 서 있는 완다 스퀘어의 주인(?)답게 그의 부(富)도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에서 18위 규모다.

2015년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 ‘완다:아시아 최고 부자의 경영 강의’에는 앞날이 보장된 군인에서 지방의 작은 부동산 회사를 창업하고, 문화산업이라는 새 영역으로 진출한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완다:아시아 최고 부자의 경영 강의’ 책 표지

독자들은 그가 직접 집필했다는 점에서 역경을 딛고 성공한 자전적인 스토리를 기대하겠지만, 이 책은 그러한 내용을 부차적인 것으로 다룬다. 

대신, 이 책에서 왕젠린은 자신의 경영 방식을 설명하거나 중국 경제를 분석하고 앞날을 예측하는 데 무게를 뒀다. 날로 커지는 중국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가들에게도 도움될 만한 통찰을 제공한다. 제목대로 270쪽짜리 가볍고도 무거운 ‘경영 강의’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여느 부자들의 자서전이나 평전들로 가득 찬 서가가 아닌 ‘경영 철학’, ‘경영자 수업’, ‘스마트 기업’ 등의 키워드가 눈에 띄는 서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의 ‘에필로그’ 격인 성공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왕젠린은 군인이었다.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참가했던 홍군의 아들로 태어나 당연히 군인이 됐다. “아버지도 군인이셨으니 입대하면 아버지를 뛰어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새기며 엘리트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직장인으로서’ 창창한 앞날이 있었지만 그도 1980년대 말 중국 개혁개방의 바람과 함께 온 ‘창업 열풍’에 영향을 받았다. 그가 “스타트업 시절”이라고 말하던 창업 초기, 왕젠린의 꿈은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드는 것이었다. 

군인 시절 왕젠린의 모습(오른쪽) [출처=완다그룹]

1988년 자본금 50만위안(8200만원)으로 설립된 완다는 현재 최고 규모의 민간 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이름이 ‘시강주택개발공사’였던 완다는 국영 기업이 모두 꺼리던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 “찬 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고 회상하지만 완다는 이때 아무도 하지 않던 혁신을 시도했다. 주택을 당시 평균보다 훨씬 큰 평수로 설계했고, 거실이라는 개념이 없던 중국에 창이 큰 쾌적한 거실 공간을 만들었다.

수익을 낸 완다는 다음 단계로 상업용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 복합 상업공간이 생겨나기 전, 계약이 복잡하고 임대료가 연체될 위험이 높은 이 사업에 관심을 갖던 부호는 많지 않았다. “관건은 경쟁이 아니라 독점이다.” 완다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업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됐다. 곧 수년 사이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우리가 아는 ‘부동산 재벌’ 왕젠린의 모습이 갖춰지는 시기였다. 

베이징에 위치한 완다스퀘어 [출처=FINTS]

초반에 빠르게 자수성가 이야기를 훑은 그는 곧바로 ‘경영 강의’로 태세를 전환한다.

왕젠린은 ‘도시화’와 ‘산업화’에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책을 저술한 2014년 그는 “앞으로 15~20년간 최소한 연평균 8% 이상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도시화율이 51%에 불과하며, 중국의 전략계획에 따라 매년 1000만~1300만명이 도시로 유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중국은 현재 산업화의 중반에 놓여있다는 판단 하에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창업할 때 살아남는 법에 대한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미국과 비교하면 중국에 기회가 더 많다”라며 “중국 스타트업은 소비 분야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한다. 인구가 많은 만큼 소비 여력이 크기 때문인데, 요식업이든 의류업이든, 발 마사지 샵이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혁신 능력이 있다면 과학기술이나 정보산업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출처=Spyhollywood]

책이 출간된 2015년 당시 그의 사업은 두가지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힘써온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전자상거래라는 새 영역에 도전했다. 그때로부터 1년 반가량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 두 시도의 ‘성패’는 뚜렷히 갈리고 있다.

문화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특히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 진출이 돋보인다. 완다는 2012년께부터 미국의 AMC와 유럽의 오디언앤드유아이씨, 호주의 호이츠 등 극장체인들을 사모았다. 지난해 1월에는 영화제작사인 레전더리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고, 유서 깊은 제작사파라마운트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이는 영화산업의 제작과 배급, 상영관까지 장악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왕젠린은 이를 통해 ‘할리우드의 가장 왕성한 포식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또 왕젠린은 부동산 사업과 문화사업이 결합된 형태의 초대형 테마파크인 ‘완다시티’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그의 책에서도 “디즈니를 이기는 법”이라며 이같은 문화ㆍ관광ㆍ비즈니스 복합 프로젝트를 설명하기도 했다.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왕젠린(가운데) [출처=완다그룹]

반면 책 후반부를 할애하며 ‘장밋빛 미래’를 점쳤던 전자상거래 시장으로의 진출은 2017년 현재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완다는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시장 독주에 대항하기 위해 바이두ㆍ텐센트와 함께 새로운 플랫폼인 ‘페이판왕’을 설립했다. 완다와 바이두, 텐센트는 50억위안(8500억원)을 출자했고, 이중 지분 70%는 완다그룹이, 남은 15%씩은 바이두와 텐센트가 가져가며 경영권을 나눴다. 왕젠린은 이 책을 통해 단순한 상품이 온라인 거래가 아닌 ‘체험형 소비’가 온라인 시장으로 넘어올 것이라며 “리조트, 영화, 문화, 요식업을 하는 많은 업체가 이 플랫폼을 사용할 것이고, 2020년에는 50억 회의 사용량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야심 차게 출발했던 페이판왕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설립부터 5년간 150억위안(2조5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2차 자금조달을 앞두고 텐센트와 바이두가 ‘투자 철회’ 의사를 밝히고 발을 뗀 것이 알려지면서다. 알리바바에 대항하려는 플랫폼이었지만, 2년이 지난 현재도 ‘티몰’과 ‘타오바오’를 앞세운 알리바바의 독주는 계속됐다. 여기에 징둥닷컴이라는 새 강자도 버티고 있다. 업계에서는 “바이두와 텐센트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게티이미지]

페이판왕은 앞서 “경쟁이 아니라 독점을 해야 한다”고 말했던 왕젠린의 철학에서 살짝 빗겨난 ‘모험’이었거나, 혁신이 때를 잘못 만나 일어난 ‘비운’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왕젠린은 금융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M&A에 적극적인 완다에게 충분한 자금을 조달해 줄 수 있는 돌파구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거세지고 있는 중국 당국의 해외 자본 유출 통제가 장애물이다. “중국에서 정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는 가까이, 정치는 멀리”해야 한다던 왕젠린이 이번에는 어떤 전략으로 장애물을 넘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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