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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판결’ 미국서 첫 합법화
뉴스종합| 2017-05-02 11:33
위스콘신 대법, AI구형 인정

“인공지능(AI)이 제어하는 스마트 기기가 법정에서 사실관계 확인, 나아가 법관의 판결에 도움을 주는 날이 올까요?”

존 로버츠 주니어 미국 연방대법원장은 지난달 렌셀러폴리테크닉대학교를 방문했을 당시 이같은 질문을 받고 “이미 그런 날이 다가왔다. 그것은 앞으로 사법부가 나아갈 매우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말처럼 AI가 재판에 활용되는 것이 더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의 일이 됐다.

미국 위스콘신주(州) 대법원은 AI 알고리즘 자료를 근거로 형사 재판 피고인에 대해 중형을 선고한 지방법원의 판결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법원은 그동안 재판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위해 암묵적으로 AI 기기를 재판에 활용해 왔다. 작년 5월엔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가 미국 로펌에 채용돼 파산 전문 변호사의 보조 역할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IBM 인공지능 왓슨과 연계된 로스는 1초에 80조번 연산을 하고 책 100만 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분석, 자체 학습을 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 이를 합법화한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I 판사’나 ‘AI 변호사’ 등 인공지능 법률가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예고하고 있다.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총격 사건에 사용된 차량을 운전한 혐의로 체포된 에릭 루미스(34) 재판에서 주 검찰이 AI 기기인 ‘컴퍼스(Compas)’를 활용해 중형을 구형하고 법원이 이를 인용해 판결한 것은 부당하다는 피고인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스타트업 노스포인트가 만든 AI 기기 컴퍼스는 알고리즘을 통해 루미스가 추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검찰은 “컴퍼스의 보고서는 피고인이 폭력 위험과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판사에게 주장했다. 판사는 이를 인정해 “컴퍼스의 평가에 따르면 루미스는 공동체에 큰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루미스는 3급 성폭력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자신이 경찰관을 기만하고 소유주의 동의 없이 차량을 운전한 혐의만 인정했는데 알고리즘을 이용해 중형을 판결한 것은 부당하다고 항소했다.

루미스는 “판사가 컴퍼스의 비밀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된 보고서를 참작함으로써 적법한 절차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자신은 알고리즘을 확인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컴퍼스의 보고서는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면서 “루미스는 이 보고서를 제외하고, 경찰을 피해 차를 타고 도주한 것을 포함한 범행 사실과 범죄 전력 등 일반적인 요인들만 고려하더라도 같은 형량을 받았을 것”이라며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이 AI의 재판 활용을 인정하긴 했지만 법원이 판결을 내릴 때 비밀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컴퍼스와 같은 양형 관련 AI 기기 제조회사들은 ‘사업 기밀’이란 이유로 알고리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NYT는 전자개인정보센터(EPIC)의 보고서를 인용해 “비슷한 알고리즘을 가진 AI 기기들이 미국 여러 주의 사법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석금을 설정하고, 판결문을 결정하고, 심지어 유무죄를 결정하는 데까지 관여한다”며 “그러나 AI 기기의 내부적인 활용은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현경 기자/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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