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를 아는 대통령이기를…
라이프| 2017-05-02 11:20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저녁 시간대에 TV를 즐겨봤다고 한다. 드라마를 아주 좋아했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들을 줄줄이 꿰고 있다고도 했다. 한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나온 이혜훈 현 바른정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밤 8시 이후에는 일정 없이 TV만 본다”며 이것이 “저녁 만찬과 조찬 일정이 없는” 이유라고 해 이런 이야기가 그저 소문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대통령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 무에 잘못된 일이겠냐마는, 그 대통령이 재직시절 벌어진 세월호 참사나 ‘비선실세’ 최순실이라는 인물 그리고 최악의 국정농단 같은 사안들이 겹쳐지자, 그건 마치 대단히 부적절한 일처럼 이야기됐다. 여기에 <시크릿 가든>의 여주인공 이름, 즉 ‘길라임’이 박 전 대통령이 차움병원을 찾을 때 쓴 가명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혹자들 중에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일 자체를 어딘지 정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백안시하는 경우도 생겼다. 직업의 특성 상 드라마를 봐야하는 대중문화 기자들은 이런 상황에 ‘자괴감’마저 느껴진다고 했다. 드라마가 무슨 죄가 있느냐는 것.

그랬다. 드라마는 죄가 없었다. 아니 나아가 예능이나 영화, 연극, 뮤지컬, 음악회 등등 모든 문화 소비 행위들은 죄가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문화가 가진, 현실을 읽어내는 그 기능과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는 오해였다. 문화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바라보면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행위가 아닌가.

하지만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이 그저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대통령이 가진 문화에 대한 인식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건 문화를 통해 세상의 낮은 목소리들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에만 빠져드는 도피적인 문화 소비 행위였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했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그 사람이 가진 소통의식에 대한 차이를 그대로 담기 마련이다. 즉 열린 시각으로 문화를 바라보며 타자의 다른 의견을 그 문화를 통해 들여다보고 또 같은 의견은 공감하려는 자세는, 타자와의 소통을 열어놓는 행위가 된다. 드라마 한 편을 봐도 그 속에 담겨지기 마련인 판타지에서 오히려 지금의 대중들이 가진 갈증을 읽어내는 일. 그것이 제대로 문화를 읽어내는 방법이 아닐까.

지난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소통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권력이지만 박근혜 정부는 인선과정에서도 투명함을 보이지 않았다. 이른바 ‘밀봉 인사’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권력은 결국 인사권에서 나오기 마련이고, 그 인사가 충분한 소통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밀실에서 이뤄졌으며, 그렇게 대통령 주변에 모인 인사들이 대면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 대통령 대신 권력을 휘두르면서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가 야기되었다. 결국 심지어 도피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불통이 누적되어 파면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문화는 소통이다. 그 양태가 무엇이든 그것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듣는 일이고, 거기에 공감하는 과정이다.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위치에 있으면 오히려 저 낮은 목소리들이 잘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문화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 제발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문화를 제대로 아는, 그래서 소통하는 대통령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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