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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탐색] 살인적 업무량에 집배원 또…‘年 500명 과로자살’ 부르는 나라
뉴스종합| 2017-07-11 10:00
-스트레스ㆍ과부하…안양 집배원 분신
-현행법 ‘과로 자살은 고의적 자해 행위’
-근로시간 특례 26개업종 과중한 업무 부담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지난 6일 오전 11시께, 매일 아침 안양우체국을 나서던 분주한 발걸음은 푸석한 재가 됐다. 이날 집배원 원모(47) 씨는 “우체국에 못나간다며” 전화를 해둔 터였다. 원 씨는 자신이 맡았던 배달 구역 주민들을 찾아가 “마지막”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원 씨는 하루하루 진한 땀방울을 흘렸던 경기도 안양시 안양우체국을 찾아 갔다. 그는 결심한 듯, 500㎖ 음료수병에 든 인화성물질로 자신의 몸을 적셨다. 21년 동안 두툼한 편지 뭉치만 쥐었던 투박한 손은 라이터를 들었다. 라이터를 켜자 닳아버린 몸은 불기둥이 돼 장작처럼 타올랐다. 전신에 2, 3도 화상을 입은 원 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죽음의 우체국 멈춰라.’ 지난달 18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전국집배원노조 등 전국우정노동자 총력 결의대회. [사진제공=연합뉴스]

7년 동안 함께 근무했던 한 동료는 원 씨가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오면서 각자 맡았던 배달 구역 재조정이 이뤄져 스트레스가 상당했다”며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편지와 지도를 보고 퇴근 후에 A4 용지에 배달 구역을 그려가며 동선을 짰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도 “안양우체국 분신 자살은 명백하게 업무와의 연계성이 있다”며 “안양우체국은 전국에서 가장 바쁜 경인지역 평균 집배부하량(1.132)보다 높은 1.154로 업무량을 많은 곳이고 재개발, 신도시 난개발지역인데도 적정인원 충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올해에만 5명의 집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사망한 집배원은 70명에 달하며, 이중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자살한 사람은 15명에 이른다. 집배원들의 과로 자살을 열악한 근무 환경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집배노조 측 입장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집배원들의 초과근무 내용을 분석한 결과 집배원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55.9시간, 연평균 약 2800시간으로 일반 노동자보다 매주 12시간 이상 더 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집배원뿐만이 아니다. 통신, 의료, 광고, 운수 등 집배원을 포함한 26개 업종은 근로시간 특례제도의 적용을 받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1961년 신설된 근로시간특례 제도는 사업자와 노동자가 합의만 되면 근로기준법이 정한 법정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초과근무를 시킬 수 있는 제도다.

정해진 급여에 과도한 업무부담 때문에 목숨을 끊는, 이른바 ‘과로 자살’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자살 동기’가 기록된 경찰청 통계 수치를 보면, 2015년 사망자 1만3436명 중 559명(4.2%)의 동기가 ‘직장이나 업무상의 문제 때문’이라고 돼 있다. 2012년엔 577명, 2013년엔 561명, 2014년엔 552명으로 기록돼 있다. ‘직장 및 업무’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한 해 500명 안팎의 희생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행법은 ‘과로 자살’을 고의적 자해 행위로 보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호법 37조 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나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것이다.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노무사는 “현행법은 자살을 자해 행위로 보기 때문에 과로나 스트레스 사실만 갖고는 과로 자살을 입증할 수 없다”며 “ 업무상의 이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를 했다는 게 의학적으로 밝혀져야만 과로 자살로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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