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영업정보 유출 처벌 어디까지 ①] ‘퇴직자엔 배임죄 적용 못해’ 첫 대법원 판결
뉴스종합| 2017-07-26 09:31
-영업비밀누설죄 외 배임죄 함께 적용 어려워져
-퇴사자는 ‘업무상 의무’ 준수 책임 없어
-퇴사자 영업정보 활용 처벌 사례 감소할 듯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근로자가 퇴직 후 회사 영업비밀을 사용했더라도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검찰은 영업비밀을 유출한 퇴사자에게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외에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를 함께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판결로 처벌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는 광학 스캐너 생산업체 A사의 기술을 무단 활용해 손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박모(40) 씨와 심모(42)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업무상 배임죄를 유죄로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박 씨는 2004~2011년 서울 소재 한 광학 스캐너 생산 업체 A사에서 일했다. 2011년 퇴사한 직후 따로 회사를 차렸고, 같은 해 8월에는 A사에서 일하던 심 씨를 영입했다. 박 씨는 이듬해 심 씨와 고객들에게 3D스캐너를 수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심 씨가 A사에서 사용하던 제품의 소스코드 33개가 활용됐다. A사는 영업비밀을 무단 활용했다는 이유로 박 씨와 심 씨를 함께 고소했고, 검찰은 부정경쟁방지법에서 처벌규정을 둔 영업비밀누설죄 외에 업무상 배임죄를 함께 적용했다. 심 씨가 회사 직원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위반해 부당하게 A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이번 사안에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냈다. 배임 혐의를 인정하려면 심 씨가 ‘회사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야 하는데, 심 씨가 A사에서 취급하던 파일을 영업에 활용한 시기는 이미 퇴직한 지 1년이 넘은 때여서 더 이상 이러한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대법원과 달리 배임죄를 인정하고 심 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1년, 공범관계인 박 씨에게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심 씨가 파일을 사용한 게 퇴사한 뒤 1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퇴사 시점에 파일을 폐기하거나 회사에 돌려줘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를 기준으로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동안 검찰이 영업비밀을 유출한 퇴사자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한 이유는 부정경쟁방지법 혐의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누설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유출된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는 점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문제되는 기술이 업계에서 통용되는 내용인지 아니면 특정 업체가 독점적으로 사용해왔는지, 해당 업체가 비밀 유출 방지를 위해 노력해 왔는지 등을 밝혀야 하는데, 재판 과정에서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배임죄는 직원이 정보를 유출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위배했고,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만 밝혀내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입증이 용이하다. 대법원은 2005년 회사 직원이 유출한 정보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이 아니라도 회사의 중요 정보라는 점이 인정된다면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부당하게 처벌범위를 확대한 것이라는 주장과 현실적으로 처벌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현실론이 엇갈려 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특정업체 인력을 빼내 그 업체 영업정보를 가져오는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만을 적용하게 돼 이러한 논란은 줄어들 전망이다.

jyg97@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