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연휴 끝…볼만한 전시①] 거장들 작품으로 물든 삼청로
라이프| 2017-10-08 16:32
갤러리현대ㆍ학고재ㆍ국제ㆍ바라캇 서울 등 4개 화랑
영국ㆍ독일ㆍ미국ㆍ아프리카 현대미술 거장들 개인전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올 것 같지 않던 2017년의 10월이 오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최장 열흘의 연휴가 끝났다. 일상으로 복귀를 앞두고 마음이 허하다면 주말 찾아갈만한 전시를 미리 체크해 두자. 지금 삼청로의 주요 갤러리들은 현대미술 거장들의 개인전이 한창이다. 스타들의 총출동이란 말도 아깝지 않다. 란 스튜디오를 시작점으로 삼청 파출소까지 이르는 길, 놓치면 두고 두고 아쉬울 전시들을 헤럴드경제가 선별했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Commonplace (with chaise), 2017, Acrylic on aluminium, 200 x 250 cm.[사진제공=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All in All’ = 삼청로 초입에 위치한 갤러리현대는 영국 개념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76)의 개인전 ‘올 인 올(All in All)’을 11월 5일까지 개최한다. 한국에서 여는 5년만의 개인전으로 신작을 포함한 30여점의 회화가 나왔다.

1973년 작가는 ‘참나무(An Oak Tree)’라는 작품으로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었다. 평범한 선반에 올려진 유리잔을 “이것은 참나무”라는 글과 함께 제시한 이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변기 작품 ‘샘’(Fontaine, 1917) 이후 또 하나의 기념비적 개념미술로 평가 받는다. 유리잔을 보고 참나무라는 작가의 도발적 제언에 관객들은 “그건 참나무가 아니다”고 반박하지만, 작가는 “그렇다면 참나무가 아님을 증명하라”고 맞받아친다. 참 혹은 거짓이라는 이분법이 사라진 자리엔 아티스트에 대한 ‘믿음’만이 남는다. ‘믿음’을 속성으로하는 예술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질문으로 현대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Commonplace (with mouse), 2017, Acrylic on aluminium, 200 x 250 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이번 전시에는 현시대를 표상하는 아이템들이 나왔다. 아이폰, 맥북, 테이크 아웃 종이컵, 블루투스 헤드폰 등이 일부분만 확대해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더이상 쪼개질 수 없는 상태’로 선보인다. 검은 윤곽선으로 그래픽 이미지처럼 단순화한 소품들을 연관성 없는 밝은 단색으로 표현, 익숙한 것들의 낯선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는 영국 현대미술가 그룹 ‘yBa’(young British artist)의 스승이기도 하다. 영국 골드스미스대학 재직시절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 줄리안 오피, 사라 루카스, 게리 흉, 트레이시 에민 등을 가르쳤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사진제공=갤러리현대]

▶학고재갤러리, 팀 아이텔 ‘멀다. 그러나 가깝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조금 지나면 한옥을 전시장으로 사용하는 학고재갤러리에 도착한다. 학고재갤러리는 독일 현대미술작가인 팀 아이텔(46)의 개인전을 6년만에 열고있다. 팀 아이텔은 신(新)라이프치히화파의 대표작가로, 구상회화가 강했던 동독과 추상성이 강했던 서독의 화풍이 더해져 독특한 스타일을 보인다. 전통유화 특유의 질박한 느낌이 살아있으면서도 화면분할 방식에선 추상성이 도드라진다.
팀 아이텔, 건축학 학습, 2017, 캔버스에 유채, 70x70cm, Photograph by Jean-Louis Losi, courtesy of Galerie EIGEN + ART LeipzigBerlin.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전시에 선보이는 모든 작품은 최근 1년간 작업한 것이다. 학고재갤러리 본관의 구조에 맞춰 작품의 크기와 위치, 갯수를 미리 결정한 뒤 제작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크고 작은 그림이 섞여있는 전시장을 돌다보면, 전시장의 여백마저 작품의 일부로 만드는 작가의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회화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고안품’이라는 작가의 철학은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캔버스로 불러냈다. 쓸쓸히 창밖을 보는 사람, 외롭게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 노숙자 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존재들이 그의 작품엔 자주 등장한다. 
팀 아이텔, 암층, 2017, 캔버스에 유채, 210x190cm, Photograph by Jean-Louis Losi, courtesy of Galerie EIGEN + ART LeipzigBerlin.[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차분하고도 따뜻한 색감은 언뜻 미국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것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작가에게 색감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빛의 색에 주목했던 호퍼와 달리 나의 그림은 늘 변한다. 이전작품은 훨씬 어두웠고, 지금은 많이 밝아졌다.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시간성과 공간성의 관계에 주목하는 팀 아이텔은 2015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유명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회화과 최연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팀 아이텔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국제갤러리, 폴 매카시 ‘Cut Up and Silicone, Female Idol, WS’=국제갤러리에선 미국출신의 세계적 현대미술가인 폴 매카시(72)의 개인전이 진행중이다. 2012년 이후 5년만의 한국전이다. 
Kukje Gallery, Paul McCarthy_K2 Installation View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컷업, 그리고 실리콘, 여성우상, 화이트 스노우(Cup Up and Silicone, Female Idol, WS)’를 제목으로 내건 전시엔 5년전 한국에서 선보였던 백설공주(Snow White) 시리즈의 스핀오프(Spin offㆍ번외작)격인 ‘화이트 스노 헤드(White Snow Head)와 다다운동을 이끈 프란시스 피카비아(프랑스ㆍ1879-1953)의 ‘여인과 우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피카비아 아이돌’(Picabia Idol) 연작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본떠 만든 ‘컷 업(CUT UP)’시리즈 등이 출품됐다. 
Kukje Gallery, Paul McCarthy_K3 Installation View [사진제공=국제갤러리]

가장 흥미로운 건 ‘피카비아 아이돌’ 시리즈다. 매끈한 완성품 옆엔 그보다 사이즈가 살짝 작은 ‘피카비아 아이돌 코어’와 ‘피카비아 아이돌 코어 코어’가 자리잡았다. “어느날 스튜디오에 놓인 ‘코어(실리콘 조각 제작을 위한 뼈대)’를 보는데, 그 추상화된 형태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코어의 의미를 깨닿는 순간 내부로의 추상이 일어났다”는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실리콘 조각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코어’를 추상 조각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그 ‘코어’를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코어의 코어’를 또 하나의 작품으로 선보인 것이다.

3관에서 선보이는 ‘컷 업’시리즈도 B급 호러물이 떠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상당하다. 작가 자신의 신체를 본 뜬 뒤, 3D 이미지 작업을 통해 50여개 패턴을 제작 이를 우레탄 레진 조각과 드로잉으로 선보였다. 신체를 예리한 칼로 난도질 한 듯한 이 작품들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작가는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세계의 폭력성을 작품에 투영했다. 실제하는 폭력이라기보단 폭력의 이미지에 가깝다”며 “이런 폭력 이미지를 부인하거나 돌려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10월 29일까지.

▶바라캇 서울, 엘 아나추이 ‘관용의 토플로지’=150년 전통의 글로벌 화랑 바라캇의 서울 분점인 바라캇 서울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엘 아나추이(73)의 첫 한국 개인전을 연다. 
엘 아나추이, skylines?, 알루미늄과 구리철사, 2008, 300 x 825 cm. 작품 앞에선 엘 아나추이 작가. [사진=헤럴드경제DB]

엘 아나추이는 병뚜껑 등 알루미늄 조각을 구리 끈으로 엮어 금속 태피스트리 처럼 만들고 이를 구기고 접어 변형시킨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서구 열강에 의한 식민시대, 반강제적인 무역협정에 따라 수입된 술병 뚜껑을 모아 선보인 그의 작업은 동시대 아프리카 문화에 여전히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서구 문화의 영향을 은유하는 동시에, 아프리카 ‘후기 식민주의’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엔 베니스비엔날레 평생공로 황금사자상을 아프리가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엘 아나추이, skylines? 세부이미지, 알루미늄과 구리철사, 2008, 300 x 825 cm. [사진=헤럴드경제DB]

‘관용의 토폴로지’라는 주제로 열리는 개인전에선 버려진 금속 소재들을 이용한 태피스트리 신작을 비롯 프린트 등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 9점이 선보인다. 특히 프린트 작품들은 초창기 작가가 작업했던 나무접시와 병뚜껑을 접기위해 바닥에 까는 목판을 차용했다. 수백 혹은 수천의 병뚜껑이 접혔던 목판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쌓였다. 작가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물건엔 그 사람의 DNA 혹은 에너지가 남는다고 믿는다. “버려진 물건들과 이를 활용해 만든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 간에 연결고리가 생겨난다. 일종의 역사, 이야기가 남아있기에 서로 연결되는 것”이란다. 금속 태피스트리엔 작가 스튜디오가 위치한 마을 주민들의 노동도 함께 들어갔다.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아프리카인 개인의 이야기이며, 구리선은 그들을 연결해주는 물건의 연결망인 셈이다. 11월 26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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