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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삼권분립 위기 자초한 靑…출구전략 고심
뉴스종합| 2017-10-18 11:07
‘갈등의 용광로가 정쟁(政爭)의 장으로…’

헌법재판소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한 국가 최고 실정법인 헌법의 분쟁을 사법적 절차에 따라 다루는 헌법재판소의 생명은 권위다. 그런 헌법재판소가 올해 1월 박한철 전 헌재소장 임기 만료 후 수장도 없이 운영된 지 벌써 10개월을 넘겼다. 정치권에선 쉼 없이 헌법재판소가 소모적 정쟁에 휘둘리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권위는 온데간데없다.

발단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이 대표적인 문재인정부 코드인사로 낙인찍혀 부결될 때부터다.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은 이 같은 유례없는 ‘보이콧’을 불러왔다. 청와대로선 당연히 거세게 반발했다. 허나, 삼권분립이 엄연한 민주국가에서 입법부는 입법부고 여소야대 정국은 여소야대 정국이다. 사유와 배경이 설사 ‘정치적 꼼수’라 해도 입법부의 결정은 내려졌다.

발단이 국회였다면 이를 심화시킨 건 청와대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김이수 권한대행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 재판관 전원이 김이수 재판관의 권한대행직 수행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국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야당은 “삼권분립과 국회 인사 동의권을 무시한 위헌적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10월 정기국회를 맞아 열린 헌법재판소 국정감사도 파행됐다. 헌재의 국감파행은 2003년 이후 14년 만이었다. 그때 역시 사무처장이 개인 사유로 자리를 비워 의원이 반발, 곧이어 국감이 재개됐었다. 이번과는 파행사유의 무게부터가 다르다. 언제 재개될지도 장담키 어렵다.

국회에 이어 헌재마저 반발했다. 헌재는 “공석인 헌재소장을 조속히 임명해 헌재가 온전한 구성체가 돼야 한다”고 공개 발표했다.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청와대에 헌재가 공식 반발한 결과다. 그런데 청와대의 반응은 “(헌재가) 청와대의 입장과 크게 취지가 벗어나지 않는다”였다. 헌재가 조속히 정상화돼야 한다는 목표로는 헌재와 청와대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권한대행체제를 유지하며 국회에 임기 관련 입법을 압박하는 청와대와, 공석인 헌재소장직을 조속히 임명하라는 헌재의 입장이 유사하다는 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입법부에 이어 헌재까지 청와대는 삼권분립의 두 축으로부터 일제히 비판받는 형국이 됐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 주체도 결국 청와대다. 청와대에 놓인 선택지론 우선 현재 공석인 재판관 1명을 임명하면서 이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는 경우다. 가장 명확한 방안이지만, 그에 적합한 후보자를 물색해야 하는 게 핵심이다. 현 8명 재판관 중에서 헌재소장을 지명할 수도 있다. 가장 빠른 시일 내에 현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혹은 우선 재판관을 임명, 9인체제를 완성한 뒤 그 뒤로 헌재소장을 지명할 수도 있다. 절차적으론 ‘정공법’이지만, 헌재소장 공백은 장기화될 수 있다. 어떤 식이든 결국 주체는 청와대이고 소모적인 공방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청와대 내에서도 정치적 논란이 확대되는 데에 부담을 느끼는 기류가 읽힌다. 입법부 외에 사법부의 반발까진 예상치 못한 탓이다. 야권과 청와대의 기싸움 속에 헌재가 희생양이 된 꼴이다. 헌재의 권위 역시 희생당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 곧장 특단의 대책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참모진과 회의를 열고 헌재소장 문제의 대책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청와대는 통상적인 보고 업무 외에 별도의 특별한 회의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주요 현안을 두고 당연히 참모진의 보고가 있을 것이고 자연스레 헌재 관련 논의가 있겠으나, 이를 위해 대통령이 별도의 대책회의를 주재하진 않는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가 결정을 내리더라도 또다시 국회에서 발목 잡힐 수도 있다. 헌재소장 임기는 역대 정부에서 반복된 논란이었으니 특히나 여소야대 정국 하 국회에서 쉽사리 청와대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고 해서 헌재의 권위를 볼모로 잡을 순 없다.

촛불혁명으로 잉태한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앞세운 삼권분립 정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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