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삼성 합병 유효판결…법원 판단근거는 “물산도 이익”
뉴스종합| 2017-10-20 11:17
이부회장 경영권 승계목적 아닌
주가기준으로 한 합병비율 정당
‘뇌물 사건’ 형사재판 영향 주목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 함종식)는 19일 일성신약 등 옛 삼성물산 소액주주 4명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무효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지난 2015년 7월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법원은 두 회사의 시너지를 위해 합병이 추진됐고 비율도 적법하게 정해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합병의 목적과 비율이 정당한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일성신약 등은 지난해 2월 소송을 내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이 무리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일성 신약 측 주장대로 합병이 무효가 되려면, 적어도 재판부가 ▷합병이 전적으로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추진됐고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현저히 불리했던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합병의 목적이 정당하고 비율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결론내렸다. ▶관련기사 11면

재판부는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만을 위해 합병을 추진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삼성물산도 충분히 합병에 동의할 이유가 있다고 봤다. 세계적인 유가하락으로 실적악화를 겪던 삼성물산이 이같은 상황을 반전(反轉)시키고자 합병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설령 합병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이뤄졌더라도, 이같은 경영상 이익을 고려하면 ‘위법 부당’한 합병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1(제일모직)대 0.35(삼성물산)’으로 결정된 합병비율도 불공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시했다.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두 회사의 주가를 고려해 정해졌다. 그러나 일성신약 등은 당시 주가가 왜곡돼 있었다며 이를 근거로한 합병비율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의 순자산은 제일모직의 순자산의 3배가 넘었지만, 국민연금이 주식을 대량매도하면서 삼성물산의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주가를 토대로 정해진 합병비율은 정당하다고 봤다. 시세조종 등으로 주가가 왜곡된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를 토대로 정해진 합병비율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 찬성표를 던진 것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공단 최광 이사장이 주총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찬성표를 던진 만큼, 공단 내부 표결 과정에 문제가 있었더라도 합병을 무효로 볼 수는 없다는 논리다. 이어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표결을 유도한 행위는 인정되지만, 투자위의 찬성의결 자체가 거액의 투자 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한 배임적 요소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적어도 투자위원들은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안정되면 장기적으로 기금 수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항소심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합병 무효 소송에서는 상법을 근거로 ‘합병절차의 정당성’을 다투지만, 형사재판에서는 ‘합병이 뇌물의 대가인지’ 등을 두루 다퉈 재판의 핵심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투자위원들이 배임이 아닌 정당한 투자행위를 했다는 판단은 이 부회장 항소심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앞서 문형표 전 장관의 1심 재판부는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기 위해 ‘배임’을 저질렀다고 판단했지만 이번 민사소송 재판부는 다른 판단을 한 것”이라며 “문 전 장관과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가 민사소송 판결문을 참고자료로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도예 기자/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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