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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민폐’유감①] 핼러윈도 지났는데…지하철에 ‘좀비’가 득실댄다고요?
뉴스종합| 2017-11-15 09:30
-스마트폰 눈 못 떼…퇴근길 3~4명 중 1명 ‘스몸비’
-곳곳서 길막고 부딪히기…에스컬레이터 등 사고 위험
-“방송 통해 주의 전하지만 직접적인 제제방안은 없어”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 “아니, 왜 갑자기 멈추셔서….”

지난 9일 대학생 이민영(20ㆍ여) 씨는 서울 동대문구 동교동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앞서가던 한 남성이 갑자기 멈춘 탓에 뒤로 넘어졌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던 이 남성은 항의를 듣고서야 사과했다. 이 씨는 “스마트폰으로 야구 게임을 하다 자기도 모르게 멈췄다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며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역에서 굳이 다른 데 정신을 파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 지난 11일 가정주부 이모(53ㆍ여) 씨는 서울 중구 회현동 지하철 1ㆍ4호선 서울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한 여성이 문이 열리자마자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그는 내리는 사람이 있든 없든 정신은 오직 스마트폰에만 집중한 상태였다. 이 씨는 “알아서 비켜달라는 듯한 이기적인 태도였다”며 “뭐가 그리 급한 지 종일 스마트폰만 보고 가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지하철역 내 계단을 오르고 있다.
한 남성이 스마트폰에 눈길을 주며 지하철역 내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좁은 지하철역 안 ‘스마트폰 좀비’(smombieㆍ스몸비)떼가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아무렇게나 걷다 부딪히고, 길목을 막으면서 보행을 방해하는 식이다.

불편 호소는 곳곳에서 터져나오지만, 서울교통공사 측도 이를 근절하기 위한 뾰족한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 12일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 지하철 1ㆍ4호선 서울역을 찾아 12번 출구에서 3번 출구로 10여분 간 걸어보니 빽빽한 역 안에서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걷는 시민은 3~4명 중 1명 수준으로 파악됐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계단을 내려가던 한 남성이 갑자기 서는 탓에 뒤따르던 많은 시민들은 도미노처럼 멈춰서야 했다. 손잡이를 잡지 않고 스마트폰만 만지면서 에스컬레이터를 성큼성큼 내려오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상당수는 다른 시민들과 수 차례 어깨를 부딪혀도 꿋꿋히 스마트폰에 눈길을 줬다. 직장인 이재홍(30) 씨는 “배려심이 없다는 생각 뿐”이라며 “(이런 사람들을 보면)괘씸해서 일부러 피하지 않고 부딪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수의 연구결과를 보면 스마트폰에 매달린 채 걷는 행위는 본인에게도 좋지 않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보며 걸을 시 시야각은 평소 약 120도에서 10~20도로 크게 줄고, 소리에 대한 반응 속도도 50% 가량 감소한다. 위험한 상황에 처할 확률이 훨씬 커지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최근 5년 동안 지하철 1~8호선 발생한 열차와 승강장 틈 발빠짐 사고는 모두 351건이다. 지난 2015년 53건, 지난해 79건 등 상승세에 있는데, 이 안에서 상당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걷다 일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공사도 ‘스마트폰 좀비’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을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부터 1~8호선 지하철 전체 277개역에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주의’ 안내문을 곳곳 부착하고 안내방송과 모니터를 통해 꾸준히 주의할 것을 전달하는 중이지만, 이 이상 적극적은 움직임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직접적인 제재 근거가 없는 만큼, 시민의식에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보행 중 스마트폰이 북적이는 지하철에서는 특히나 더 다른 시민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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