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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은 장애인의 날] “성폭력도 ‘애정’으로 착각… 그들은 사랑에 목마르다”
뉴스종합| 2018-04-18 11:26
조선영 발달장애인 성교육 전문가
성교육 자격증 취득…매뉴얼 제작
지역-부모연계 통합 프로그램 필요

“발달장애인은 주변 사람이 잘 대해주면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발달장애인들은 늘 사람을 그리워하고 애정받기를 갈망하기 때문이죠.”

지난 13일 서울시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조선영<사진>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사회복지 근무 경력 15년차인 그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발달장애인 전문 성교육 전문가다.

현장에서 발달장애인 성폭력 피해가 얼마나 많으냐고 묻자 그는 한숨부터 쉬었다. “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부모들이라면 정말 수도 없이 겪는다”며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 피해를 당해 돌아올 때마다 너무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조선영 사회복지사 [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그는 가족과도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계속해서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발달장애인 전문 성교육 기관이 없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직접 발달장애 성교육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난 2008년 장애인ㆍ노인 성교육 전문과정을 이수하고 성폭력 예방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3년부터는 발달장애인 통합적 성교육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청소년, 성인, 노인 등 연령별 발달장애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직접 성상담을 진행했다. 현재는 유튜브를 통해 발달장애인 성교육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발달장애인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역사회 등이 연계해 발달장애인들이 데이트를 하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장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론이다. 처음 그는 발달장애인에게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나쁜 것이고, 이는 분명하게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해서 학습시켰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났어도 성폭행 피해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를 감추거나 가해자를 감싸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문제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된 발달장애인들은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강해 주변의 작은 호의에 쉽게 마음을 열었다. 그들은 성폭력을 당하기 전후 가해자가 가하는 따뜻한 손길을 애정표현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로 경찰서에 가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더 이상 발달장애인에게 ‘안 된다고 말하라’, ‘자리를 피하라’는 식의 부정적인 성교육이 아니라 그들의 성적 욕구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는 2013년부터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데이트 코칭’에 나섰다. 이들이 진정한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경험해야만 성폭력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실제 데이트 코칭을 받던 한 중년의 발달장애인이 모르는 여성과 단 둘이 식사를 처음 해봤다며 울면서 너무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발달장애인이 그만큼 정상적인 인간관계조차 못 맺고 지내는 게 현실”라고 말했다.

실제 발달장애인 데이트 코칭을 받은 발달장애인들은 눈에 띄는 변화들을 보였다. 처음에는 이성 앞에서 지나치게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던 한 발달장애인은 이성의 음료에 빨대를 끼워주고 겉옷을 챙겨주는 등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였다. 평소 제대로 씻지도 않던 한 지적장애인은 클렌징 폼으로 세수를 하고 스킨, 로션까지 바르는 등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다. 친화력이 부족했던 지적장애인이 언어표현력이 향상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정부와 지역사회, 사회복지사, 학부모 등이 모두 연계된 통합적 성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찌 보면 발달장애인의 성폭력 피해는 그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무관심했던 사회가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들도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그는 마지막으로 발달장애인 성에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메일(3895513@hanmail.net)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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