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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곳곳이 경영환경 적신호,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장 목소리
뉴스종합| 2018-11-05 11:45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한국 경제와 관련해 “지금의 하방 위험성이나 불안정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수출은 역대 최고이지 않습니까.”

경제 위기를 언급하자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답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수출이 괜찮은데 비관적으로만 경제를 바라보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다. 정부가 추진중인 ‘소득주도성장’이 장기적으로 내수를 일으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적자를 감수하고 내년도 경영계획을 짜는 기업들이 많다는 현장의 얘기를 부쩍 들은 터라 상당한 괴리감을 받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종종 쓰는 표현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수출 내용을 뜯어보면 경제 위기의 징후를 곳곳에서 포착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60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반도체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반면 자동차와 선박, 무선통신기기, 디스플레이 등 다른 주력 산업의 부진은 계속되고 있다. 올들어 1~10월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0.4%에 불과했다. 반도체 호황이 끝나면 우리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도 위험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도 반도체 가격과 수요에 대한 우려로 시설투자(CAPEX) 규모 축소를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가 시장에 돌고 있다.

수출과 함께 국내 경제의 양축인 내수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궁극적으로 내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소득 격차를 줄이며 국내 소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으로, 경제 정책의 방점은 분배에 찍혀 있다.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 조사결과(소득부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전국 2인 이상)은 453만5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2% 증가했다.

이 가운데 가구 소득 5분위(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913만4900원으로 10.3% 증가한 반면 1분위(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32만4900원으로 7.6% 줄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격차가 확대돼 양극화가 더욱 심해졌다는 의미다.

수출과 내수는 물론 우리나라를 둘러싼 글로벌 경제 환경 역시 위기감을 높인다.

당장 세계 경제의 G2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며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생산성이 하락하고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2년 후 최대 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무엇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지난달 31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2로 기준선인 50에 근접하며 지난 2016년 7월 이래 2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PMI가 50을 밑돌면 ‘경기위축’ 국면에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 GDP가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 GDP는 0.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 현장에서는 이같은 대내외적 경제 환경에 대한 우려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미 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최악의 수준이다. 국내 설비투자는 지난 3월 이후 6개월 연속 줄어 20년 만에 최장 감소 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린다. 수출입은행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직접 투자액은 올 상반기 74억달러에 달했다. 198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 규모다.

기업들의 경기 전망 역시 암울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 제조업부문의 업황 BSI는 71로 지난달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2016년 10월(71)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다.

최근 만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 투자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규제를 푼다고 하는데 체감할 정도로 풀어준 것이 없다”며 “정부가 외교안보 이슈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경제는 소외되는 분위기”라고 아쉬워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1년반 가까이 총괄해온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교체될 것이라는 말이 많다. 후속 인사에 대한 하마평도 돈다. 책임자가 바뀐다고 정책의 기본이 바뀔지는 회의적이지만, 어쨋든 현 경제상황을 위기로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으로 이해하고 싶다.

n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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