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디자인 입은 ‘헤리티지’…홍콩을 다시 ‘발견’하다
라이프| 2018-11-06 16:10
 
유명 건축가 듀오 헤르초크&드뫼롱이 설계한 타이퀀의 아트갤러리 전경. 사진(홍콩)=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새롭게 거듭난 홍콩의 문화공간들


오래된 새장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정부 아파트 사이 사이로 대형 쇼핑몰과 글로벌 기업 사무공간이 들어선 고층 빌딩들…. 홍콩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도시다. 1㎢ 당 7000여 명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은 시·공간을 한데 아우르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한다.

홍콩은 늘 새롭게 발견하는 도시다. 다양한 콘텐츠가 홍콩이라는 도시 플랫폼 위에서 생명력을 갖고 역동한다. 그 중에서도 아트&디자인을 콘셉트로 한 정부 주도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 결과물들은 홍콩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드는 주요인 중 하나다.

2008년 홍콩 정부 주도로 계획된 ‘역사적 건물 재활성화 프로젝트’(Revitalizing Historic Buildings)는 헤리티지를 간직한 옛 건물들의 역사성을 아트&디자인을 콘셉트로 새롭게 재건하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도시 재생 프로젝트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경마를 주관하는 홍콩 자키클럽(JC) 같은 기관이 후원하며 10년째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홍콩의 역사적 건물들은 교육·문화시설로 모습을 바꿔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타이퀀 내 아트갤러리인 JC 컨템포러리 입구.
▶범죄자 수용소에서 복합 문화공간으로… ‘타이퀀’(Tai Kwun)=역사적 건물 재활성화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가장 최근 모습을 드러낸 게 ‘타이퀀’이다. 올드타운센트럴 지역의 란카이펑과 소호 사이에 자리잡은 타이퀀은 1864년 지어진 건물로, 원래 ‘센트럴 경찰서’였다.

이 경찰서의 뒷편에는 범죄자를 수용하는 유치장과 감옥이 붙어 있다. 1995년 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지난 2008년 재활성화 일환으로 10년 간 레노베이션을 거쳤다. 

유적지 공간들은 보존된 형태로 상설 전시장으로 쓰이고, 건물 곳곳에 카페, 레스토랑, 바, 서점, 티하우스 등이 자리잡고 있어 늦은 밤까지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타이퀀 JC컨템포러리의 상징이 된 나선형 계단.

타이퀀 건물 1층 곳곳에는 카페, 레스토랑, 바, 서점 등이 입점해 있어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아트 갤러리와 공연장 건물도 이 역사적 공간에 새롭게 들어섰다. ‘JC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와 공연장은 유적지를 끼고 서로 마주보는 형태다. 여기에는 스위스 바젤 출신의 건축가 듀오 헤르초크&드뫼롱의 손길이 더해졌다.

두 건물은 캡슐 형태의 은회색 알루미늄이 외관을 뒤덮고 있다. 1860년대 벽돌과 화강암을 썼던 유적지였음을 고려해 모던한 재료인 알루미늄을 사용하되 벽돌처럼 층층이 쌓인 모습으로 설계해 유적지와 조화를 꾀했다.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들의 손을 거쳐 최근 완공된 타이퀀 헤리티지 아트센터는 조만간 ‘힙스터’들의 성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PMQ 외관.
▶경찰 기숙사가 디자이너 레지던시로…‘PMQ’=올드타운센트럴에서 타이퀀보다 앞서 명소가 된 역사적 건물은 PMQ다. 전시 협업 등 활발한 교류 활동을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PMQ는 홍콩의 도시 재생 모범 사례로 자주 언급돼 온 디자인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서울시의 남촌재생 플랜 중 회현 제2시민아파트를 문화예술인을 위한 주거 겸 창작공간으로 조성하기로 한 계획이 PMQ를 벤치마킹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초 PMQ 부지는 19세기 말 홍콩의 수호신을 모시는 절 터였다. 1889년 서양식 교육을 위한 홍콩 최초의 초·중등 공립학교가 문을 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일본군의 폭격을 맞아 기존 건축물이 일부 훼손되기도 했다. 전후 1951년에는 정부가 늘어난 홍콩 경찰 인력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고자 기혼 경찰 가족들을 위한 사택으로 이용했다. 

PMQ 건물 중정에는 옛 유적지의 모습이 일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역사 유적지인 PMQ는 2014년 정부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한 크리에이티브 랜드마크로 변모해 오늘에 이르렀다. 약 100여 개의 디자인 업체들이 입주해 있으며, 누적 방문객은 1000만 명을 훌쩍 뛰어 넘었다. 아트&디자인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는 PMQ는 주말이면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명소가 됐다. 

아시아소사이어티홍콩 본관에서 유적지 건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모습.
▶탄약고가 전시장으로…‘아시아소사이어티 홍콩’=옛 탄약고 건물을 되살린 비영리 전시 공간인 아시아소사이어티 홍콩은 홍콩을 방문하는 ‘아트 러버’들에게 반드시 들러야 할 전시장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빅토리아 피크 중반 녹지에 자리잡은 이 건물은 빌딩 숲 속 자연 휴양림 같은 아늑함을 간직하고 있다. 미술 전시뿐 아니라, 건축물 이곳 저곳 전시된 조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느긋하게 산책하기에도 최적이다.

4개 동의 탄약고 중 3개동은 정부가 역사적 건물로 지정했다. 화강석으로 새롭게 지은 본관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부부인 빌리 첸과 토드 윌리엄스의 건축 사무소가 설계를 맡았다. 이들은 미국 시카고의 ‘오바마 대통령 센터’ 도서관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아시아소사이어티홍콩 건물 외벽에는 영국 출신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인간 형상을 한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탄약을 수송하는 철길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모습.

옛 탄약고 복도 모습.
본관에 연결된 구름다리를 건너 유적지 건물은 옛 탄약고의 외양이 보존돼 있다. 건물 바닥은 탄약을 운반하기 위해 쓰이던 철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건축물은 2016년 미국 건축가협회(AIA The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로부터 명예건축상(Honor Award for excellence in Architecture)을 수상했다. 

SCAD 전경.
▶옛 법정 모습 간직한 디자인학교 ‘SCAD’(Savanah College of Art & Design)=홍콩섬을 건너 구룡반도의 삼수이포(Sham Shui Po) 쪽으로 가도 도시 재생 프로젝트와 관련된 건물들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삼수이포는 아직까지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구도심이어서, 홍콩 사람들의 실생활을 더욱 가깝게 느껴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북구룡 법원건물을 레노베이션 한 SCAD는 미국과 프랑스에 캠퍼스를 두고 있는 글로벌 디자인 학교다. 수백년 묵은 반얀트리들이 멋스럽게 드리워져 있는 이 건물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법원 건물이었다가 2009년 레노베이션에 착수, 2010년 SCAD가 영구 임대해 아트&디자인 학교로 재개관했다. 

유치장 철창이 그대로 보존된 채 곳곳에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다.

강의실 복도 공간에도 미술작품이 걸려 있다.
옛 법정의 모습을 간직한 강의실.

갤러리 같은 분위기의 SCAD 건물 내부 모습.
SCAD는 재판이 진행됐던 법정 공간을 그대로 강의실로 쓰고 있다. 피의자 임시 수용소와 같은 공간들은 철창을 남겨 뒀다. 

또 복도, 엘리베이터 등 작은 공간 구석구석까지 SCAD 재학생 및 졸업생들의 작품들이 마치 미술관을 보는 듯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사전 예약하면 일요일을 제외하고 도슨트와 함께 건물 내부를 투어할 수 있다. 

옛 공장 건물을 재건해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쓰고 있는 JCCAC 전경.
▶난민 판자촌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로…‘JCCAC’=센트럴에 PMQ가 있다면 삼수이포에는 JCCAC가 있다. 1977년 지어진 이 건물은 과거 인쇄소와 플라스틱 제조업 등 가내수공업 공장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정부 헤리티지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4년 동안의 리모델링을 거쳐 아티스트 레지던시 겸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오늘날의 JCCAC가 있기까지는 자키클럽의 힘이 크다. 자키클럽은 한국의 ‘마사회’ 같은 기관으로, 영국령이었던 1876년부터 자선기금 조성을 위해 경마를 시작했고, 현재는 경마, 복권, 스포츠 토토 등 3가지 사업권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 수익의 77%는 사회복지기금과 자선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JCCAC에 입주한 한 아티스트의 작업실.
자키클럽은 공업단지 빌딩을 인수해 아티스트 레지던시인 JCCAC를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시, 공연, 컨퍼런스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로 홍콩 시민은 물론 전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홍콩=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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