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피플 & 스토리①] 판사에서 정치인, 로펌 대표로… 강금실 변호사
뉴스종합| 2018-12-07 09:00
4일 서울 강남 법무법인 원 사무실에서 강금실 대표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hco@heraldcorp.com]
-‘첫 여성 법무장관 출신’으로 20대 로펌 중 유일하게 여성 대표 맡아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 전수안 전 대법관과 함께 ‘젠더법’ 연구도
-법무법인 원에서 세월호 유족 민사소송,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이끌어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었지만, 법조계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국내 20위권 로펌 중에서 여성이 대표를 맡고 있는 곳은 법무법인 원이 유일하다. 참여정부 시절,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법무부장관을 지냈던 강금실(61ㆍ사법연수원 13기) 변호사는 또 한 번 의지와 무관하게 ‘여성 1호’ 수식어를 달게 됐다. 정치권을 떠난 지 10년 만이다. 여성 법조인들에게 롤모델 같은 존재인 강 대표를 4일 서울 강남 법무법인 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강 대표는 1983년 판사로 임관하면서 법조계에 발을 내딛었다. 여성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자체가 뉴스가 되던 때였다. 첫 부임지인 서울남부지원에는 여자 화장실도 없었다. “처음에는 남자 화장실 안에 한쪽 칸을 내줬어요.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올 때마다 밖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후 나왔어야 했죠. 그러다 점차 전국 법원 각 층에 여자 화장실이 생겼어요. 화장실 발전과 함께 사회가 변화해나간 셈이죠.” 그때만 해도 여성 판사가 10명이 채 안 됐다.

그는 여성 법조인으로 소명과 책무를 가지고 살아왔다. “제가 잘나서 ‘최초’, ‘첫’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닙니다. 유리천장을 깨는 시기에 딱 마주친 세대였습니다. 장관이 된 이유도 여성이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장관직을 사양하면 또 언제 여성이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지위를 맡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소명감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힘썼다. 일을 못하면 여자라서 일을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 동료들이 큰 힘과 용기를 줬다. 특히 먼저 여성 법조인으로 앞길을 열어준 이영애(70ㆍ3기) 전 춘천지방법원장, 전효숙(67ㆍ7기) 전 헌법재판관, 전수안(66ㆍ8기) 전 대법관이 많은 힘이 됐다. 함께 일한 적은 없었지만 종종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전효숙 전 재판관과 전수안 전 대법관과는 최근 성평등 문제를 연구하는 ‘사단법인 올, 젠더와 법 연구소’를 창립했다. 전효숙 전 재판관이 이사장을, 강 대표는 이사를 맡았다.

강 대표는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다. 성평등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을 받는 사건이다. 2000년, 현재 헌법재판관으로 재직 중인 이석태 변호사와 함께 제주인권학술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위한 법적 접근’ 논문을 발표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이 변호사, 현 여성가족부 장관인 진선미 변호사 등과 함께 팀을 꾸려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과 헌법소원심판을 냈다. 법무부장관 시절에는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과 함께 호주제 폐지 내용을 담은 민법개정안을 마련했다. “호주제는 헌법에서 명시한 보편적 가치에 명백하게 반하는 것이었어요. 제도라는 게 바꾸고 보면 별문제가 아닌데, 바꾸기 전까지는 각자 가치관이 달라 여러 갈등이 발생해요. 필요한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게 지혜롭게 사는 법이죠.”

강 대표는 2000년 법무법인 지평에서 초대 대표 변호사를 맡았었다. 이것 역시 ‘국내 첫 여성 로펌 대표’라는 평가를 받았다. “로펌에서 파트너가 되는 여성이나 대표가 많이 나오지 않는 뿌리깊은 이유가 있죠. 저는 싱글이니까 문제가 안되지만, 아이를 키우거나 결혼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고요.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인맥이 남성 중심이죠.” 그 후 18년이나 흘렀지만 성별에 따른 사회역할 불균형은 여전하다. 그는 ‘교육, 복지 영역과 달리 경제, 권력 분야에 남녀차별이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젠더갈등도 남녀 간 사회적 격차 때문에 발생합니다.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65% 정도 수준에 그치고, 의사결정권 직위를 맡는 경우도 드물어요. 의식적으로 젠더 이퀄리티(성평등)를 높이기 위해 변화를 줘야 합니다. 로펌 대표로서도 힘쓸 생각입니다. 이미 우리 로펌의 최고재무관리자(CFO)는 여성이 맡고 있고, 여성변호사 비율도 30%에 이릅니다.”

강 대표가 정치권에서 법조계로 복귀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2008년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이 마지막이었고, 그간 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몸담았던 곳과 완전히 절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강 대표가 전면에 나섰던 게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 사건이었다. “2009년 12월 어느 날 밤이었어요. 한 전 총리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와 앞으로 수사를 받게 될 것 같다고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셨죠. 제가 제일 먼저 떠오르셨나 봐요. 예민한 정치 이슈였고, 로펌 입장에서도 부담됐지만 첫 여성 총리를 돕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계기가 됐습니다. 정치를 멀리한다는 이유로 노 전 대통령께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도와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맺혀 있었어요.” 결국 그는 박종문 조광희 등 법무법인 원 변호사들과 함께한 전 총리의 변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았다. 한 전 총리는 대한통운 뇌물사건에서 무죄를, 한신건영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는 유죄를 최종 확정받았다.

법무법인 원은 2015년 세월호 희생자 유족의 민사소송을 맡았다. 박근혜 정권이 힘이 있을 때였고, 자칫 로펌에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섰다. “그때 이유정 변호사가 ‘엄마로서 도저히 이 사건을 마다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공동체 가치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서로 분리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강 변호사는 이제 판사로 재직했던 기간인 13년을 넘겨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10년차 판사가 됐을 때만 해도 평생 법관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변호사 개업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전 남편의 사업 부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변호사가됐다. 의도치않게 시작한 변호사 생활이지만 적성에 더 맞았다. “판사를 그만둘 때는 굉장히 무섭고 겁이 났어요. 윤관 전 대법원장께서 사직을 만류하시기도 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변호사가 더 적성에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만두길 잘했다 싶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이더군요. 살다 보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하지만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시련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치를 떠난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스스로를 법조인에 적합한 ‘규범적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정치생활을 하면서 법률적 가치가 훼손되거나 어긋나는 걸 못 견디겠더라고요. 사안을 떠올릴 때도 가장 먼저 법적 측면에서 접근했고요. 정치는 과감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조정, 타협이 필요한 영역이었어요. 규범적인 인간인 나와는 맞지 않는 분야였죠.”

그는 로펌 대표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자유를 되찾고 싶다는 꿈을 털어놨다. “우선 법무법인 원이 더 큰 나무로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일을 잘 마무리하고 65세 정년까지 마친 후에는 ‘개인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는 거죠. 평생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어요.”

강 대표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격무 속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말라고 조언한다. “매일 사는 일에 지치다 보면 내 자신이 법률가로서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존재인지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녹록하지 않은 변호사 업계 현실 속에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kwater@heraldcorp.com

<강금실 대표가 걸어온 길>
 
▷경기여고,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 13기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 ▷서울고법 판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 ▷제55대 법무부 장관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제4회 지방선거 열린우리당 서울특별시장 선거 후보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포럼 지구와사람 대표(현) ▷사단법인 선 이사장(현) ▷사단법인 올 젠더와 법 연구소 이사(현) ▷법무법인 원 대표 변호사(현) ▷저서 ‘서른의 당신에게(2007)’, ‘오래된 영혼(2011)’, ‘생명의 정치(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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