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안함(뉴스속보)
[광화문 광장-강태은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 우리 가족 행복연구소
뉴스종합| 2018-12-11 11:49
필자의 집에는 ‘오렌지색 포르쉐’가 돌진할 태세로 주차돼 있다. 지난해 필자의 생일, 틈틈이 모은 돈으로 남편에게 사 준 선물이다. 그 전 어느 날이었다. 책상을 정리하다 남편의 노트북 검색창에 남겨져 있던 ‘레고 포르쉐’라는 글자가 세탁기를 돌려도, 양파를 썰어도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호박 100개를 사고도 남을 가격인데, 눈 딱 감고 모른 척 해?” ‘후덜덜한 가격’에 수십 번을 고민한 결과, 가족을 위해 애쓰는 우리 남편은 레고 장난감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멋지고 귀여운 ‘명품 포르쉐’를 한 방에 선물했다. 내심 “자기 행복이 내 행복이야”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일임에도 남편 선물을 사 주는 멋진 아내가 돼 보고 싶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우리 집 공간에는 이런 스토리가 엮인 물건이 가득하다. 서로에게 선물하거나, 누군가에게 선물받거나, 스스로의 노력에 포상한 선물이다. 18년 전 이 집을 수리할 때 가벽을 세우려던 현장소장에게 “벽을 허물어 달라”며 단호한 결정을 내린 후 우리는 부엌만 분리된 20평의 원룸에 살고 있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남들이 다 갖춘 화장대, 소파, 장식장을 과감히 버리고, 꼭 필요한 것, 설렘이 있는 것만 취했다.

단, 연애 시절부터 남편과 했던 ‘우리들의 책상 2개를 나란히 둘 것’이라는 약속은 23년째 절대 원칙으로 지켜왔다.이제는 아들이라는 추가 멤버와 함께 각자의 책상 3개를 두고 때로는 독서실처럼, 때로는 ‘MARVEL’이 새겨진 게이밍 의자를 삐걱거리는 PC방처럼 활용한다. 때로는 의자를 싹 밀어 방바닥을 운동장 삼아 마음껏 뒹군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책꽂이용 선반에는 남편이 조립한 레고 ‘뉴욕 스트리트’가 낭만을 더하고, 그 위에는 아들이 수학 100점 도전을 목표로 엄마의 5만원 지원에 성공한 ‘반지의 제왕 호빗의 화살’이 근엄한 웃음을 자아낸다.

새벽마다 이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그리고 벽마다 빼곡히 채워진 책들을 꺼내 읽는다. 살아감에 필요한 영양분을 꽉꽉 채울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여기에 향기로운 커피를 더한 ‘아침 맞이’는 결코 소소하지 않은 일상의 행복이다.

지난 주말, 아들의 수험 생활과 가족의 2018년을 정리하며 설렘이 없는 것,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을 과감히 버렸다. 아들은 재수 생활 1년간 목표를 향해 성실히 도전했다.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아들이 평소 실력을 다하지 못한데 대해 우리 모두 속상해했다.

10년 이상 모아 온 아들의 빛바랜 플래너, 연말마다 함께했던 ‘10대 뉴스 모음집’, 각자의 꿈을 적은 수년간의 버킷 리스트,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라며 ‘삶의 물음표’가 생길 때마다 함께 읽었던 책 속 한마디를 뒤적이며, 우리는 2018년 12월이 결코 절망이 아님을, 이 또한 ‘근접 성취’임을 깨달았다.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풀었던 아들의 문제집, 꼼꼼히 적어 둔 ‘개념노트’들을 살펴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치 있는 2018년이었네.” 집안을 말끔히 정리한 후, 우리는 ‘방바닥 놀이터’에 와인상을 차려 소박한 가족 파티를 열었다.

“엄마, 처음으로 누구의 강요가 아닌, 내 스스로 원해서 절실함으로 공부했어. 그래서 더 깊이 있게 공부했고, 앞으로도 이런 노력의 경험치는 살아갈 때 큰 힘이 될 것 같아.” 끄덕이며 주르륵 흘러내린 필자의 눈물에는 내 인생이 그러했듯, 앞으로 넘어야 할 몇개의 산들을 아들 스스로 꼭 넘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녹아 있었다. 마음 한 구석, 아들의 그 산들은 내가 겪었던 그 산들보다 덜 각지고 비탈지지 않기를 필자는 기도했다.

“2018년 열심히 산 우리를 위해 선물을 사자!” 어둑해진 그날 초저녁, 필자는 가족과 함께 나가 아들에게 휴대폰을 수험생 할인 이벤트로 선물하고, 남편에게는 조립식 자동차를 선물했다. 대신 청춘 시절 친구가 받아 너무너무 부러워했던 내 덩치만한 곰인형을 두 남자에게 선물받았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아들의 새 휴대폰이 시끄러운 알람을 울린다. 방긋 웃는 아빠 곰과 ‘노란색 레이싱 자동차’ 한 대도 더해졌다.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20평의 좁은 집에서 200평보다 넓은 마음의 뜰을 나누며 우리는 또 달라질 2019년 우리 집을 상상해 본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