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현장에서] 또 표류하는 과학기술계 기관장 인사
뉴스종합| 2019-02-27 11:22
“올해 1분기는 그냥 이렇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몇 달째 기관장 공백을 겪고 있는 과학기술계 정부출연 연구기관 관계자의 푸념이다.

수장이 없는 과학기술계 연구기관에서 야심차게 추진되는 사업은 이전 기관장이 하던 일이라는 이유로 올스톱되기 일쑤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26일 열린 임시이사회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의 신임 원장 선임 안건을 올리지 않았다. 연구회는 “이사회에서 원장 선임이 아예 논의가 되지 않았다. 다음 이사회 안건으로 올릴 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ETRI와 원자력연은 연구회 산하 25개 출연연구기관 중에서도 예산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기관들이다. 지난해 12월에만 해도 연구회는 “늦어도 2월 초에는 신임 원장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또 다시 선임이 미뤄지면서 인선은 안갯 속이 됐다.

과기계 안팎에서는 ETRI의 경우 내정설까지 돌던 유력 후보자의 부실학회 참가 전력이 부담이 된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공모를 거쳐 추려진 원자력연 신임 원장 후보 3명들은 모두 내부인사라는 게 선임이 연기된 배경이 됐다는 얘기들도 있다.

“원자력연을 쪼개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원자력연 내부 수장으로는 자성과 혁신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대외의 비판을 정부가 의식했다는 것이다.

과기계에서는 결국 이번에도 ‘재공모’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기적으로는 최종적인 인선은 올 상반기 내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절차적으로는 기관장 선임 권한은 연구회 이사장에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의중이 반영된다는 게 중론이다. 3월초로 예상되는 개각에서 과기부 장관도 포함될 것이 확실시돼 두 기관 수장에 대한 인사는 4월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이 시나리오도 과기부 장관 내정자의 청문회 무사 통과를 전제할 때의 얘기다.

수장 없는 연구기관이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하다. 용역 계약직 노동자 수가 최소 100명에서 최대 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ETRI는 지난해 12월 이상훈 전 원장이 퇴임하면서 공동출자회사 참여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올해 업무 계획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조직 혁신이나 미래 비전 설계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는 4월 당장 설립 60주년을 맞는 원자력연은 수장 없이 60주년 기념식을 치러야 할 판이다.

과학기술계 연구기관장의 ‘빈 자리’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기관장들의 사임과 퇴임, 이로 인한 업무 공백은 하루가 멀다하고 속출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기관장이 자리를 떠났다. 차기 원장이 임명되기까지 기관장 공백 기간은 평균 4~5개월이 걸렸다. 과기계 내부에서는 “각 기관장 임기가 정해져 있는 만큼 퇴임일이 다가오기 전에 기관장 선임 과정을 미리 거쳐 놓으면 사전에 이런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는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인사는 만사라고 했다. 철저한 검증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빈 자리가 오래 지속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 투자가 인색한 현실에서 출연연이 홀대받고 국민들 기억 속에서 잊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아 미래산업섹션 4차산업팀 기자/dsun@herla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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