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과학] 우주의 99% ‘플라즈마’…농업과 만나다
뉴스종합| 2019-02-28 07:32
플라즈마를 활용한 작물 재배. [출처 국가핵융합연구소]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우주의 99%를 차지하는 물질이 플라즈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고체, 액체, 기체가 아닌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돼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있는 제4의 물질상태다. 그런데 이런 플라즈마가 음식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가까운 시일 내 플라즈마 살균효과를 이용한 아삭아삭한 김치를 1년 내내 맛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플라즈마를 쪼인 새싹인삼이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올 수도 있다. 핵융합 연구의 대표적인 파생기술로 꼽히는 플라즈마 응용 기술인 ‘플라즈마 파밍(Plasma Farming)’ 덕분이다.

▶플라즈마가 농업을 만날 때=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지난 25일부터 나흘간 제주대학교 아라컨벤션홀에서 ‘2019 플라즈마 파밍 동계 워크샵’을 열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동물과 식물의 생산성 향상, 농산물 저장성 확보, 식품 안정성 제고, 고부가가치 바이오 소재 창출 등을 위한 플라즈마 연구와 플라즈마 파밍 기술 평가, 산학연 생태계 조성 등 5개 주제 아래 35개 소주제를 바탕으로 40여 명의 전문가가 논의를 진행했다.

물질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구성돼 있다. 서로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전자가 원자핵에 붙어있는 형태다. 이때 온도를 높이게 되면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기체로 변한다. 여기서 온도를 더 높이면 전자와 원자핵이 모두 떨어져 자유롭게 움직이는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번개와 오로라가 대표적인 플라즈마 상태다. 플라즈마 현상을 응용해 만든 발명품도 있다. 형광등과 네온사인이다.

산업이 고도화 되면서 플라즈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과 만나게 됐다. 현재 초고집적도 반도체 제조 공정의 70% 이상은 플라즈마 공정으로 이뤄질 정도다.

이후 태양전지나 저급탄 가스화 등 에너지 분야 등으로 확장됐고 2000년대 이후에는 바이오 산업의 발전과 함께 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 분야는 임상 실험이라는 진입 장벽이 있어 주로 치과나 피부과 등 장비에 제한적으로 플라즈마 기술이 적용되는 추세다.

더 나아가 플라즈마 기술은 농식품 분야에서도 검토되기 시작했다. 핵융합연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는 2014년부터 농식품 전주기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플라즈마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의 혁신기술연구부 산하에는 플라즈마 바이오연구팀과 플라즈마 발생원연구팀이 있다. 이들은 농식품 분야에서의 플라즈마 활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핵융합연이 개발한 플라즈마 발생장치 Array type DBD. [출처 국가핵융합연구소]

▶농작물의 재배부터 관리, 식품 안전까지
= 농식품에 활용 가능한 플라즈마는 섭씨 30도에서 수백 도로 온도가 낮은 저온 플라즈마다. 저온 플라즈마는 이온, 전자, 래디칼, 자외선(UV) 등 여러 가지 구성 원소를 갖고 있는데 각각의 특성이 매우 다양해 농작물 재배, 수확 후 관리, 농식품 안전 등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핵융합연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의 농작물 재배 연구는 씨앗 발아부터 수확까지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플라즈마의 물리적, 화학적 자극에 의해 씨앗의 발아율이나 새싹의 성장률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새싹인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새싹인삼은 성장까지 보통 4~6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짧은 기간 많은 실험을 진행하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오재성 플라즈마 바이오연구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새싹인삼 연구 1년 만에 눈에 띄는 결과를 얻어냈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따르면 플라즈마로 처리한 새싹인삼의 초기 출아율은 일반 새싹인삼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초기 생장률 또한 50% 정도 더 향상됐다. 플라즈마로 처리한 새싹인삼은 일반 새싹인삼과 비교해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 등 인삼의 유용 대사체 함량이 1.6~2.5배 높았다.

농식품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플라즈마 기술은 이뿐만이 아니다. 플라즈마의 래디칼이나 자외선을 이용하면 작물을 살균할 수도 있다. 오랜기간 저장도 가능해진다. 씨앗 살균에서부터 저장, 포장, 유통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매우 넓다.

플라즈마를 발생시켜 작물에 다양한 환경을 조성하는 ‘Array type DBD’ 장치 개발은 핵융합연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의 대표적인 성과다. 장치는 플라즈마를 발생시키는 전극을 병렬로 촘촘하게 나열한 뒤 그 사이에 공기를 주입해 플라즈마 세기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윤성영 선임연구원은 “공기 중에 플라즈마를 발생시키면 53가지 정도의 화학종이 발생한다”며 “이 화학종을 어떻게 결합하고 어느 정도 거리에서 농작물에 쪼이느냐에 따라 식물에 끼치는 영향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플라즈마와 식물종자 간의 거리가 0.1㎜ 내로 유지되도록 전극 구조를 설치하는데 특히 주안점을 뒀다”고 덧붙였다.

플라즈마 파밍 기술이 상용화 단계까지 나아가려면 연구 협업은 필수적이다. 오재성 플라즈마 바이오연구팀장은 “농식품 등 바이오 전문가는 플라즈마의 물리적 원리를 잘 알지 못하고, 플라즈마 전문가는 농식품의 생장 매커니즘을 잘 알지 못한다”며 “그래서 반드시 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성봉 혁신기술연구부장은 “올해는 특히 물리, 화학, 농업, 식품, 생명, 공학, 정보통신기술(ICT)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이뤄진 융합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유기적인 산학연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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