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피아니스트 백건우 쇼팽과 밤산책을 떠나다
라이프| 2019-03-08 11:56
도이체 그라모폰 통해 ‘야상곡 전곡’ 음반 발매
전국 11개 도시 돌며 연주
“녹음은 영원히 남아, 앨범작업 더 할 것”



‘건반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73)가 낮고 조용한 소리로 찾아왔다.

이번엔 쇼팽의 녹턴이다. 2017년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하며 ‘베토벤’에 몰두하던 그가 쇼팽과 다시 만났다. 어느날 스튜디오에서 쇼팽 ‘녹턴’ 악보를 훑어보다가 시작된 일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쇼팽 야상곡이 새롭게 나타나더라고요. 새로운 야상곡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들었어요”

기대감은 곧 현실이 됐다. 백건우가 세계적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을 통해 쇼팽 녹턴(야상곡) 전곡 음반을 발표했다. 녹턴 전집 앨범은 2013년에 발표한 슈베르트 이후 6년 만이다. 녹음은 지난해 9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이루어졌다.

쇼팽의 수많은 곡 중에서 녹턴을 선택한 이유는 “쇼팽을 가깝게 그려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쇼팽은 큰 홀에서 연주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작은 살롱 같은 공간에서 자기 곡을 연주하고, 그것을 통해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했습니다. 쇼팽 연주를 봤던 이들은 때로는 그 연주가 너무도 조용해서 잘 안 들릴 정도였다고 전하죠.”

녹턴은 주로 밤에 영감을 받고 작곡해 야상곡(夜想曲)으로도 불린다. 총 21곡으로 이뤄진 쇼팽의 녹턴은 길이는 짧지만 시적 상상력과 섬세한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많은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야상곡이라고 하면 ‘참 예쁜 곡’,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곡’이라고 말해요. 그러나 전 이 곡이 굉장히 깊이가 있는 곡이라고 봐요. 자세히 들어보면 그 안에 들어있는 많은 드라마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줄리어드 음대 시절부터 쇼팽을 연주했지만, 최근에서야 ‘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쇼팽이 외로웠던 사람이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조국을 떠나 있었고 몸도 아팠습니다. 사랑도 그리 성공적인 편은 아니었고, 금전적으로도 그리 여유 있지는 않았고요. 쇼팽 곡이라고 다 조용하지 않아요. 쓰라림을 표현하기도, 울분을 터트리기도, 자기가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꿈꾸기도 하죠.”

백건우는 이 녹턴을 느린 박자속에서 우아하게 연주한다. 피아노가 가진 고유의 울림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녹턴이 지닌 소리, 즉 무리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울리는 소리,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 힘을 안 줘도 빛을 발하는 소리를 만드는 것이 첫 숙제였습니다. 초반에는 날이 흐려서 피아노에서 침체한 소리가 났지만, 날이 갈수록 해가 났고 그제야 피아노에서도 햇빛이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났어요.”

음반 발매를 기념해 순회공연도 갖는다. 12일 마포아트센터를 시작으로 군포, 여주, 대구, 안산 등 11개 도시를 돈다. 쇼팽의 4·5·7·10·13·16번과 즉흥곡 2번, 환상 폴로네이즈, 왈츠 1·4·11번, 발라드 1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문화라는 건 모든 사람이 똑같이 누려야 할 권리이며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게 음악인의 책임”이기에 섬으로, 산으로 가는 일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백건우는 “앞으로 더 많은 앨범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연주는 그때로 끝나지만 녹음은 영원히 남는다. 전달하고 싶은 음악을 정성껏 연주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거장의 작지만 소중한 선물이다. 받는이의 마음에도 잔잔한 파도가 인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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