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고무줄 소비자가격①]술집마다, 편의점마다 소주값 천차만별 요지경 세상…도대체 소주 한 병에 얼마지?
뉴스종합| 2019-05-10 10:29
-들썩이는 소주 물가, 서울 주요 상권 가보니
-출고가 65원 오르면 납품단가 200~300원 인상 효과…실제는 1000원~3000원 인상
-소주값, 편의점 별로도 200~300원 차이
-유통마진, 식당 인건비, 임차료도 이유

최근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 업계 1위 업체들의 출고가 인상이 이어지며 서민 술값이 들썩이고 있다. 참이슬 한 병(360㎖)의 출고가는 기존 1015.7원에서 1081.2원으로 65.5원 올랐지만 편의점, 마트, 식당 등에서 실제로 판매되는 소비자 가격은 1000원~3000원까지 격차를 보이며 ‘고무줄 가격’ 논란이 일고 있다.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이유정 기자] #. 직장인 김모 씨(39)는 요즘 부쩍 소주값에 민감해졌다. 지난 4일 주말에 동네 지인들과 찾은 술집에선 소주 한 병에 4000원을 받아 소주값에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후 서울 종로에서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에선 소주값이 5000원으로 올랐다. 이틀 후 찾은 강남 신사동 이자카야에선 술값이 7000원인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판매처나 식당별로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애주가들 입장에선 ‘술값이 이렇게 천차만별일 수 있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지난 1일부터 하이트진로가 참이슬의 출고 가격을 인상하면서 서민 술로 여겨지던 소주값이 들썩이고 있다. 참이슬 한 병(360㎖)의 출고가는 기존 1015.7원에서 1081.2원으로 65.5원 올랐지만, 편의점ㆍ마트ㆍ식당 등에서 실제로 판매되는 소비자 가격은 1000원~3000원까지 격차를 보이며 ‘고무줄 가격’ 논란이 일고 있다. 소주나 맥주 등 주류는 물론 농수산물, 수입식품 등도 원재료나 도매가 인상폭이나 관세인하폭 대비 소비자 가격은 제각각이다. 대표적으로, 최근 가격이 오른 소주 가격이 얼마나 다른 지 본지 기자가 직접 둘러보고 그 이유를 살펴봤다. 

지난 2일 찾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식당 입간판에 소주, 맥주 가격이 모두 5000원으로 표시돼 있다. 앞서 오비맥주는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하며, 소주와 맥주 모두 가격 인상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원재료 가격 및 제반 비용 상승으로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유정 기자/ kula@heraldcorp.com]

지난 2일 찾은 서울 강남, 여의도 일대에는 ‘소주=5000원’이란 공식이 굳어지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주요 상권이 밀집한 이들 지역의 소주값은 이미 출고 가격 인상 전부터 5000원에 형성된 곳이 많았다.

강남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강남에서 10년 째 음식점을 영업 중인 사장 김모 씨는 “그동안 소주 출고가 인상에 대응하며 가격을 올려 한 병당 5000원에 팔고 있다”면서 “이 이상 올리기엔 손님 입장에서도 비싼 가격이어서 소주값 5000원이 마지노선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강남 일대 일본식 선술집을 비롯해 고급 한식당 등에선 소주 한 병에 6000원에서 최대 7000원까지인 곳이 예사였다.

대표적인 서민술인 ‘소주’답지 않은 가격에 소비자들은 혀를 내두르지만, 점주들은 누적된 매장 임차료 및 인건비 상승도 사실상의 가격 인상 요인이라며 입을 모은다. 고급 식당의 경우 일반 음식점보다 좋은 입지에 큰 규모, 높은 임차료를 감당하는 만큼 술값도 고가에 형성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네 상권에서는 소주 한 병당 4000원에 판매되는 곳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상승폭은 천차만별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소주 출고가가 65원 오르면 실제 식당에 납품되는 단가는 100~200원가량 뛰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류법상 주류 생산업체는 유통 면허를 갖지 못한다. 제조사는 유통업체인 도매상들에게 술을 납품하고 도매상이 이를 다시 편의점, 마트, 식당 등 소매상에게 납품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유통 마진이 붙어 실제 소비자 가격은 더 높아지게 된다. 소매점 납품 단가는 어느 도매상과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소비자 가격 인상폭은 편의점 별로도 200원~300원가량 차이를 보였다. 편의점이 위치한 지역과 지점에 따라 1400원에서부터 1800원까지 상이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같은 편의점 브랜드라도 광화문점과 일산점의 소주 가격이 다르다”며 “일괄적인 가격 정책이 있는 게 아니라 가맹점주가 각각 고정비 등을 고려한 마진을 조정해 가격을 산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주값이 고무줄이다 보니 기존 4000원에 소주를 판매하던 식당들도 가격 인상을 고려하는 곳이 늘고 있다. 여의도에서 갈빗집을 운영하는 점주 신모 씨는 “인건비나 재료값, 임차료가 지속적으로 오르다 보니 술값이라도 올리려고 한다”며 “이달 내로 올릴 계획이지만 아직 다른 가게들도 누가 먼저 올릴 지 눈치싸움 중”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가격 인상 계획이 없는 식당들은 인상 시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 가능성을 걱정했다. 강남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강모씨는 “주류 매출에서 소주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데 몇백 원 오르지 않은 공급가에 소비자 가격을 또 올리면 손님 유입이 그만큼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비자들은 이 같은 고무줄 가격 인상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직장인 김경석(30) 씨는 “최근 기름값에다 소주값까지, 가장 많이 소비하는 두 품목이 한꺼번에 올라 체감이 크다”며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른 상황에서 가계를 꾸리는 데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제는 소주를 먹어도 가게를 골라 다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kula@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