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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법 개정 한달…‘길은 먼 곳에’
뉴스종합| 2019-05-17 11:26
임차인 “법망 피할 방법 여전”
건물주 “과도한 재산권 침해”
종로·마포·용산 등 갈등 지속


서울 마포구의 망원동 골목. 이곳에서 만난 임차인들은 임대차보호법이 실효성이 없다고 호소했다. 성기윤 기자/skysung@

세들어 장사하는 이들(임차인)의 권리를 크게 강화한 상가임대차법(상임법) 개정안이 시행된지 한달이 지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임차인들은 건물주들이 여전히 법의 사각을 교묘히 활용해 권리금을 떼먹기 일쑤이며 계약갱신요구권의 예외 조항을 활용한 법망 피하기도 적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대인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상가 계약을 한번 하면 ‘10년 의무’ 임대 조항이 붙는 등 현행법은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이다. ▶관련기사 2면

4월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상임법 개정안은 환산보증금 상한액을 서울의 경우 9억원(기존 6억1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골자다. 환산보증금 9억원 미만의 임차인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법무부는 주요 상권의 상가임차인 95%가 법의 보호를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10년(기존 5년)으로 하고, 권리금 회수 보호기간을 6개월(기존 3개월)로 늘렸다. 또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임차인의 권리가 보호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서울 종로구와 마포구, 영등포구 등에서 만난 세입자들은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임차인들은 법망을 피해 임대료와 관리비를 무리하게 올리는 등 건물주의 꼼수가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울산에서 휴대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42) 씨는 “양도양수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건물주가 임대료를 3배 가까이 올리는 방식으로 이를 훼방하는 등 내쫓았다”면서 “법이 개정됐지만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건물주의 권리금회수 방해 문제도 여전했다. 현행법상 권리금은 임차인과 새로운 임차인 사이에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건물주가 새로운 계약 체결을 막을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적지 않다.

예컨대 부산에서 인형뽑기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건물주가 갑자기 재건축을 한다며 나가라고 했다. 현행법상 재건축을 이유로 새 계약 체결을 막으면 임차인 입장에선 권리금 회수는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개정안에 대한 건물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건물주들은 계약갱신요구권을 10년으로 묶은 것이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환산보증금 상한액이 늘어나 법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임차인이 늘어난 것도 건물주들의 불만을 키우는 이유다.

서울 영등포에서 만난 건물주 한모(56) 씨는 “건물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악’이라고 봐선 안된다. 경기가 좋지 않아 원룸도 텅텅 빈 상태”라며 “임대료를 올리고 싶어도 오히려 임차인 눈치가 보여서 못 올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보다 실효성 있는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보호법 이후에도 서로의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임대차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영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상임활동가는 “상가임대차법은 계약 갱신 기간을 정할 것이 아니라, 정당한 계약해지 사유가 있는지에 따라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민법에 대한 특별법이다. 건물주 입장에서 보면 임차인을 너무 보호한다는 측면이 있다”며 “법적으로만 건물주의 의무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공존하겠다는 의식이 생기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정세희ㆍ성기윤 기자/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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