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인터뷰] 싸구려와 럭셔리 사이…K패션 꿈꾸는 이태원 뒷골목 디자이너
뉴스종합| 2019-05-28 08:18
-박승건 ‘푸시버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댄스가수ㆍ모델ㆍ스타일리스트 등 안해본 것 없지만 디자이너가 천직
-패션계서 비주류 취급 받았지만…조직력 갖춘 브랜드로 ‘롱 런’
 

[사진=박승건 ‘푸시버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내가 어떻게 패션쇼를 해요. 패션계가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2009년 박승건은 친하게 지내던 정욱준 디자이너로부터 서울컬렉션에 참가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미 이태원 뒷골목에선 스타였지만 패션계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알았기에 망설였다. 하지만 2004년 론칭한 자신의 브랜드 ‘푸시버튼’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고고한 패션계의 문을 두드리기로 결정했다.

당시 청담ㆍ압구정을 중심으로 피어나던 주류 패션업계는 박승건의 등장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키치’ 콘셉트를 내세운 푸쉬버튼은 톡 쏘는 콜라에 적신 체리처럼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구를 강타하는 화려한 색상과 발랄하고 위트 넘치는 재킷, 스커트, 팬츠 등이 주를 이뤘다.

서울컬렉션에 지원했지만 기대와 달리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개성 넘치는 의류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브랜드는 어디까지나 비주류로 여겨졌다. 이듬해 합격한 그는 신진 디자이너라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제네레이션 넥스트(GN)’를 건너뛰고 바로 2011년 봄ㆍ여름(S/S) 컬렉션 본 무대에 올랐다.

10년이 지난 지금 푸시버튼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브랜드로 성장했다. 2010년 이후 홍콩, 중국 등 10개국에 진출했으며 지난해에는 런던 패션위크에 올랐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나 혼자 산다’ 등에 출연해 더 유명해진 박승건 푸시버튼 디자이너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쇼룸에서 만났다.

▶바비인형을 질투했던 소년=박승건은 어렸을 때부터 옷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양장점을 운영하던 어머니 곁에서 자라며 알게 모르게 패션을 동경했다. 어설픈 미미인형에 만족하다가도 친구가 갖고 있는 바비인형을 보면 질투심과 부러움에 밤잠을 설쳤다. 아버지는 여성스러운 아들이 못마땅해 컴퓨터, 태권도, 주산 학원만 골라 보냈지만 박승건은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를 때만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했다.

10대가 돼서는 옷을 닥치는 대로 샀다. 어머니가 산더미처럼 쌓인 옷을 보고 호통을 치면 줄을 매단 바구니를 7층 창문 밖으로 내려 옷을 몰래 길어 올렸다. 때로는 여자 옷을 입었고, 머리를 핑크색이나 노란색으로 염색해 ‘별종’ 취급을 받았다.

“경험해본 놈은 못 이긴다는 말이 있죠. 양질의 옷이든, 저질의 옷이든 닥치는 대로 입어봤던 게 패션 디자인을 하는 원동력이 됐어요.”

박승건은 고등학교 졸업 후 복장학원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20살 무렵 샛길로 빠졌다.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는 어딜 가도 주목을 받았고,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1995년 댄스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패션을 스타일로 구체화하는 것에 더 관심 있었던 그는 스타일리스트로 전향했고 이후 모델, 의류납품 프리랜서 등을 거쳐 패션디자이너가 됐다.

“당시 패션 디자이너들은 스타일링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옷을 상의, 하의로 따로 보지 않고 한 벌로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어떻게 옷을 스타일로 표현할지에 대한 감각을 키웠어요. 테일러링이 명확한 재킷과 청바지, 굽이 가늘고 긴 핀 힐과 양말을 조합하며 항상 ‘믹스매치’를 주장했어요.” 

푸시버튼 2019 가을ㆍ겨울(F/W) 컬렉션

▶패션꾼이된 이태원 날라리들=20대 박승건은 마당발이었다. 이태원 구석구석을 쑤시고 다니며 찬란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태원 ‘인싸’들은 눈만 마주쳐도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봤다. 이제는 푸시버튼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 된 곽두영 대표와 한세나 디자인 실장이 그랬다.

박승건은 푸시버튼을 세울 때부터 든든한 지원군을 모았다. 디자이너로서 홀로 서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는 겉으로는 화려해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물갈퀴질하기 바쁜 백조 같다”고 말한다.

5명 이내의 소수 인원으로 운영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특성상 디자이너는 생산, 재무, 홍보 등을 도맡아야 한다. 너무 깊숙이 개입하다보면 독창적인 디자인보다 경제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되고, 장기적으론 안정적인 브랜드 운영마저 힘들어진다.

푸시버튼이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15년 가까이 ‘롱 런’ 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박승건은 전체적인 디자인 방향을 제시하고, 한세나는 디자인 실무를 담당하며, 곽두영은 브랜드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3인조 체제다.

“회사처럼 조직력을 갖춘 왕국을 건설한 게 자랑스러워요. 다른 디자이너들도 ‘세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부러워하죠. 모든 일을 분업화ㆍ문서화ㆍ조직화해 한 명이 빠져도 구멍 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저는 온전히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죠. 그 덕에 예술을 잘 포장하는 장사꾼이 됐다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조직력의 승리인거죠.” 

2019 가을ㆍ겨울(F/W) 런던패션위크

▶K패션에 거는 기대=“한국은 국가 브랜드의 힘이 부족한 편이에요. 70만 원짜리 이탈리아 상품에 선뜻 지갑을 여는 소비자도 60만 원짜리 한국 제품 앞에서는 망설이죠.”

박승건은 아직 ‘메이드 인 코리아’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비해 국가 브랜드의 가치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신호들은 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무대에서 성공하고, 최소라ㆍ배윤영 등 톱모델이 나오면서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쌓이고 있다. 그는 이런 현상들이 축적되면 향후 유수의 해외 바이어, 에디터들도 K패션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일본, 중국 등 어느 국가도 한국처럼 세계적인 판을 만들지 못했어요. 한국 시장을 등한시하는 디자이너도 있지만,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면 중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높아지는 편이죠. 국내에서 얻은 경쟁력을 그대로 해외에 들고나가야 해요”

이를 증명하듯 박승건은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19 봄ㆍ여름(S/S) 런던 패션위크에 올랐다.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런던 컬렉션은 규모부터 달랐다. 서울컬렉션과 달리 캐스팅 디렉터, 컨설팅, 홍보 관계자를 의무적으로 써야했고 항공비, 운송비 등도 만만치 않았다. 국내에서 패션쇼를 준비하는 데 5000만원에서 1억원이 든다면, 런던에서는 2억원에서 2억5000만 원가량이 들었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 영국 패션협회의 지원을 받아 런던컬렉션에 참가했지만 생각보다 현지 반응이 좋았어요. ‘이 바지 하나쯤은 안 팔려도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한쪽 다리만 노출된 팬츠를 만들었는데 묘하게 잘 팔리더라고요. 런던은 재기발랄한 아시아 디자이너에게 한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는 것 같았어요. 이미 미니멀 디자인을 잘 하는 디자이너는 자국에도 많거든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패션계=“얼마 전에 유튜브에 관한 보고서를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어요. 분석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닌데,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해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박승건은 본능에 따라 옷을 입고 만들었다. 시대를 앞서간 적은 있어도 뒤처진 적은 없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최근 패션 트렌드는 모바일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동안 한 시즌 앞서 컬렉션을 발표하며 트렌드를 제시했던 디자이너들은 영향력을 잃었다. 오히려 즉흥적으로 패션을 보여주는 인플루언서들이 트렌드의 기준이 됐다. 패션계의 판이 수시로 바뀌면서 디자이너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요즘 안식년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시장을 분석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다가 매출이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고.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다보니 오히려 예전처럼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을 망설이는 것 같고. 반갑지만 한편으론 두려운 혼란의 시기인 것 같아요.”

박승건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한가지만은 확실해요. 죽을 때까지 옷을 하고 싶어요. 너무 무식한건진 몰라도, 다음 행보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어느 시점에 가서는 푸쉬버튼 규모를 축소해 더 실험적인 옷들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팔지 않고 진열만 해도 되는 옷이요. 그 때가 되면 집과 사무실, 쇼룸이 하나로 이어진 공간에서 온종일 옷만 만들 거예요.”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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