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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익숙한 것도 낯설게…패션의 본질을 꿰뚫는 기교
뉴스종합| 2019-07-15 09:01
한현민 '뮌(MU¨NN)' 디자이너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방탄소년단, 엑소 등 세계적 아이돌이 직접 찾아입는 브랜드가 있다. 한현민 디자이너가 전개하는 남성복 브랜드 ‘뮌(MU¨NN)’의 이야기다. 뮌은 홍보를 위한 협찬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의상을 구매하거나 돈을 내고 대여해야한다.

뮌은 테일러드 중심의 남성복 브랜드로서 드물게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 이후 스트리트 브랜드가 유행을 휩쓸었지만, 그 가운데 고유한 영역을 구축했다. ‘낯설게 하기’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패턴의 조합방식, 봉제의 순서와 방법, 소재와 개념 등을 이질적으로 풀어낸다.

한현민은 2013년 데뷔 이후 우수한 디자이너만 선정된다는 ‘텐소울’에 4년 연속 뽑혔다. 2018년 서울패션위크에선 30여명의 디자이너 중 단 한명만 받는 ‘베스트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해외로도 보폭을 넓혔다. 올해 처음으로 세계 4대 패션쇼인 ‘2020 봄·여름(S/S) 런던패션위크맨즈’에 올랐다. 외신은 ‘런던의 스타 탄생’이라는 제목을 달며 그의 등장을 예의주시했다. 비록 떼돈은 벌지 못할지라도 꾸준히 뮌의 가치를 높여가겠다는 한현민을 신사동 가로수길 쇼룸에서 만났다.

‘뮌(MUNN)’의 한현민 디자이너가 2020 S/S 런던패션위크맨즈에서 한복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남성복을 선보였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드는 디테일=한현민은 디자인 뿐 아니라 룩북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는다. 카메라 렌즈로 옷의 어떤 부분을 잡아낼지, 사진을 편집할 때 타이포그래피는 어디에 배치할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작업한다.

그는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그래픽과 사진을 공부했다. 그러나 근원적인 욕구는 패션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진로를 바꿔 2008년 패션전문학교인 사디(SADI)에 편입했다. 그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구현하는 시각디자인보다, 한 시즌 앞서 트렌드를 제시하는 패션디자인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한현민은 남성복 브랜드 ‘우영미’에서 경험을 쌓았다. 피팅 모델로 시작해 인턴 자리까지 따내 하이엔드 브랜드가 굴러가는 방식을 체득했다. 사디 졸업전시에서는 졸업생 18명 가운데 1등을 차지했다. 대기업에 취직해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보장되지 않은 길을 택했다.

뮌은 패션과 사진, 그래픽에 대한 한현민의 경험을 집약한 만큼 정체성이 뚜렷하다. 땅거미에 내려앉은 그림자마냥 일관되게 차분하고, 서늘하며,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뮌(MUNN)’을 상징하는 ‘셀비지(원단의 종류, 혼용률, 생산지 등이 적혀진 원단의 가장자리)’ 디자인. 옷 제작 과정에서 버려지는 셀비지를 재킷에 그대로 노출시켜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다.

▶버려지는 옷감 가장자리도 디자인으로=한현민은 자신의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는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를, 유행을 좇는 속도로는 스트리트 브랜드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한현민은 브랜드의 본질은 감도 높은 디자인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학에 나온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차용해 브랜드에 적용시켰다. 익숙한 것도 한번 비틀어 관객에게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법이다.

뮌을 상징하는 ‘셀비지’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셀비지는 원단의 종류, 혼용률, 생산지 등이 적혀진 옷감의 가장자리로 옷 제작 과정에서 버려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현민은 이를 잘라내지 않고 재킷, 팬츠 등에 그대로 노출시켜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살려냈다.

그는 “셀비지를 레터링이나 스트라이프처럼 표현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 원단을 쓰는 지 알려주는 정보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현민은 셀비지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2016·2017 울마크 프라이즈’ 아시아 남성복 부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뮌(MUNN)’ 2020 S/S 런던패션위크맨즈 피날레. 모델들이 이미 보여줬던 옷 대신 튜닉으로 변형된 양복 커버(가먼트 백)를 입고 등장했다.

▶묘하게 섬뜩한, 그래서 더 한국적인=한국적인 미는 다시 정의되고 있다. 예전처럼 한글, 오방색 등 한국적 요소를 비단처럼 펼쳐놓은 작품은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처럼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섬뜩하고, 이질적인 작품이 더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한현민이 한복에서 영감받아 런던패션위크맨즈에서 선보인 컬렉션도 이러한 한국적 미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등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와 동일한 컬러 파레트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양적 미에 서양적 미를 포갰다. 한복의 전통 소재인 시스루 오간자와 자카드 실크로 서양 남성복을 만들었다. 반대로 스포츠용 나일론과 방수 소재는 한복의 실루엣을 담은 의상으로 재탄생시켰다.

패션쇼 피날레에는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일반적으로 피날레에서 이미 들어갔던 모델들이 한꺼번에 줄지어 나오며 컬렉션의 모든 의상을 한 번 더 보여준다. 그러나 한현민은 이미 올렸던 옷 대신 튜닉으로 변형된 양복 커버(가먼트 백)를 입은 모델들을 등장시켰다.

한현민은 “관객들의 예상을 뒤집는 일종의 ‘배반의 재미’”라며 “관객들이 가먼트 백 안에 옷이 있다고 상상하도록 여지를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컬렉션으로 눈을 돌리다=한현민은 이번 런던패션위크맨즈 참가를 기점으로 해외 컬렉션에 좀 더 무게중심을 실을 계획이다. 결국 패션계는 세계 4대 패션위크인 뉴욕·파리·밀라노·런던을 중심으로 공전하기 때문이다.

세계 4대 남성 패션위크는 매년 1월과 6월에 두 번 열린다. 반면 서울패션위크는 2~4개월 후인 3월과 10월에 개최된다. 이 같은 시차 덕분에 서울패션위크는 해외 유명 바이어와 프레스가 빠짐없이 참석하는 행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대다수 바이어가 지정된 예산을 4대 패션위크에서 소진해 국내 브랜드 바잉으로 이어지기 힘든 현실적 문제도 있다.

한현민은 해외 무대에서 가장 쟁쟁한 디자이너들과 동등하게 겨뤄볼 계획이다. 재정적으로도 탄탄한 기반을 다져 뮌을 더 안정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킬 방침이다. 한현민은 숨을 내쉬듯 긴장을 풀며 말했다.

“6년 동안 후회 없이 달려왔고 매 시즌 발전했어요. 더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고 더 멋있는 쇼를 보여주기 위해 해외에서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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