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日 ‘모노즈쿠리’ 경제 위기…수출규제로 드러났다
뉴스종합| 2019-08-21 10:50
출처: IMD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모노즈쿠리’(もの造り)로 통하는 장인정신의 쇠퇴가 일본의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 위기의 해답도 모노즈쿠리에 있다. 디지털과 결합한 제조업 생산 혁신으로 기술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모노즈쿠리 ‘첨단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올해 6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내놓은 400여쪽에 달하는 ‘2019년 모노즈쿠리 백서’에 실린 내용으로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일본 경제의 미래를 모노즈쿠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고충이 드러나 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모노즈쿠리 백서에는 글로벌 경제 여건 악화에 따른 일본 모노즈쿠리의 고민과 과제가 곳곳에 묻어나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전쟁, 대중 수출 감소, 신흥국 약진 등에 따른 일본 기업의 실적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겨냥한 일본의 수출규제의 본질이 강제징용 배상이나 위안부 문제에 따른 게 아니라 자국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로 해석되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과의 경쟁력 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데 따른 일본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올해 일본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30위다. 전년과 비교해 다섯 계단이나 떨어졌다. 반면 올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8위로 일본을 앞질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경우에도 2000년에는 일본이 한국의 3배 이상 차이를 보였지만 작년에는 격차가 8000달러 수준으로 좁혀졌다.

모노즈쿠리 백서는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제조업 경쟁력의 약화를 꼽았다. 백서는 “재료 분야라는 한 우물을 판 깊이가 있다. 제조업 실적은 2012년 12월 이후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일본 공작기계 수주량과 일본 산업용 로봇 수입량은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자 계열의 최종 제품 매출액 시장 점유율도 저하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 배경으로 엔고로 인한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점을 짚었다. 백서는 “중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후발국의 약진에 엔고까지 겹쳐 수출이 큰 타격을 받았다”며 “특히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표되는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환율이 요동치면서 엔화 가치가 상승한 것이 가장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신흥국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데 반해 일본은 고용이 불안해지고 실질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비도 극도로 위축됐다는 것이다.

버블 붕괴, 리먼 사태 등 그동안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힘은 모노즈쿠리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모노즈쿠리란 ‘물건을 만들다’라는 뜻의 일본어로 일본은 각종 경제 위기 때마다 기술에 천착하는 모노즈쿠리에서 답을 찾았다. 일본은 1999년도에는 주조, 열처리, 용접, 도장 등 26개 전통 제조업 영역을 모노즈쿠리 기반 기술로 지정했고 이후 2006년에는 중소기업 모노즈쿠리 기반 기술 고도화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서 품목을 확대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핵심능력을 가진 단카이 세대(1947~49년생)가 산업현장에서 물러나면서 이들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후세에 전달되지 못한 데다 중소기업의 일손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맞물렸다. 백서는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산업기술 인재 확보에 문제가 있는 중소기업이 94.8%로 나타났다”라며 “이는 일본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문제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다시 모노즈쿠리에서 위기의 해답을 찾고 있다. 그러나 사물인터넷(IoT)이 결합된 제조 혁신 등 첨단화된 모노즈쿠리를 강조한다. “제조 공정의 비용 압축, 제조 공정 전체 가치 사슬을 고려한 데이터 활용 능력 강화, 소재 공정별 입지 전략 심화 등 미래지향적인 조치가 급선무”라는 게 백서의 ‘대응방안’ 요지다.

이어 백서는 “일본 기업은 중국·미국·독일 기업에 비해 새로운 제품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 제품 생산 간소화·자동화 부문은 여전히 열위에 있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한 제조 등 생산 방식의 디지털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원장은 “새로운 글로벌 가치사슬과 동북아 분업 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라며 “한국은 일본의 추가 규제조치에 대한 개별적, 단편적 대응을 지양하고 선진국 진입에 따른 부품, 소재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dsu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