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현장에서] LG화학-SK이노, 심판보다 중재자가 필요하다
뉴스종합| 2019-09-05 11:13

이제야 ‘대화’라는 말이 나왔다.

전기차 배터리 기술유출과 특허침해를 주장하며 양보없는 맞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이야기다.

양사의 소송전은 지난 4월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주(州) 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하며 불이 당겨졌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명예훼손과 특허침해로 국내 법원 등에 맞소송을 제기하며 싸움의 판이 커졌다.

두 회사는 이미 2014년 배터리 분리막 제조기술과 관련 특허소송으로 맞붙었다가 서로 한발씩 물러나며 법정다툼을 종결지은 전례가 있다. 30여년 전부터 기술개발에 나선 ‘선발주자’와 과감한 투자로 무섭게 시장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는 ‘다크호스’의 자존심 싸움은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두 회사가 최근 몇 일새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금이라도 전향적으로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소모적인 다툼을 매듭짓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LG화학은 “경쟁사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성있는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한편, 이에 따른 보상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의사가 있다면 언제든지 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기술유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LG화학은 사과, 재발방지, 피해보상을 요구한데 반해, SK이노베이션은 “전제조건을 건 대화는 사실상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집안싸움이 결국 해외 경쟁사들만 웃게 만드는 소모전이라는 인식에는 공감하는 모습이다. 때문에 이번 갈등을 매듭지을 ‘솔로몬’ 같은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대화의 주체는 소송 당사자인 양사 최고경영진”이라며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간의 대화창구를 사실상 제시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전기차 배터리가 그룹의 미래를 담보할 주력사업으로, 한해 수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그룹 경영의 최정점인 최태원-구광모 총수 간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푸는 것도 방법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아울러 ‘제3자’인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와 청와대는 상처뿐인 소송전을 중단하고 원만한 해결에 나설 것을 주문했으나 중재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다툼이 국내 전기차 배터리 산업 전체에 득보다 실이 많은 만큼 정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재차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커 보인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은 양사가 소송전으로 시간과 공력을 소모하는 동안 빠르게 시장에서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특히 강력한 경쟁상대인 중국 업체들이 발빠르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배터리 공급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싸움 구경’에 어부지리까지 얻는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경쟁자를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싸움은 그만두는 게 현명한다는 판단이다. igiza77@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