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현장에서] 후쿠시마와 미세먼지…과학이 무기가 되는 시대
뉴스종합| 2019-09-25 11:24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처리 문제는 단순히 과학적 근거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방사능 오염물 처분 방법이 정당해야 하고, 환경이나 신체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원칙부터 선행돼야 한다.”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는 “과학적인 데이터 너머”에 있는 “상식과 원칙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이다.

엄 위원장의 말처럼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는 아니다. 특히 원자력 분야는 그렇다. 미증유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 누구도 100% 안전하다거나, 그와 반대로 100%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계의 영역에 있다.

지난 5월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 금지와 관련된 세계무역기구(WTO) 항소심에서 1심 패소를 극적으로 뒤집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정부의 태도가 유효하게 작용했다.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미달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과학적인 수치로 재반박하기 보다, 일본 데이터가 가진 허점을 찾아내 “먹거리 안전이 여전히 담보되지 않았다”는 근거를 당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영역이 아닌 논리의 영역이었다.

다만 운이 좋았다. 일본이 제공한 제한된 데이터 내에서 반드시 빈틈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 이는 후쿠시마로 직접 날아가 데이터를 측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였다. 그런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원들이 일본 데이터의 허점을 기적적으로 찾아냈다.

다만 항소심 승소의 기쁨도 잠시였다. 석달 만에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것도 한국 정부가 아닌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토요시 후케타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 위원장이 원전 오염수 방출 필요성을 언급했고, 한국 정부는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출을 저지하기 위해 국제공조에 나서겠다며 부랴부랴 목소리를 높였다.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은 안전하지 않다”는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어필해 일본을 외교적으로 따돌리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이 국내 환경에 미치는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연구 보고서 하나 없는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택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정부의 “과학적인 데이터 너머”라는 언급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력하게 받아들였던 이유다. 서울 소재 국립대학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지 8년이나 지났다”라며 “보통 이런 경우 미국, 유럽 등은 1000페이지가 넘는 국내 환경 영향성 평가서를 작성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환경을 위한 연구를 방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과학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예산에서도, 인력에서도, 시스템에서도 늘 순위밖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해양 국내총생산(GDP)은 국내 전체 GDP의 6%로 추정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우리 해양 생태계가 망가질 경우 발생될 피해는 최근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 규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한국 정부가 미세먼지의 원인으로 중국을 탓하면서도 이 문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항공데이터 측정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면 중국은 미세먼지 분야 연구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국의 최근 3년간 미세먼지 분야 SCI 논문 게재건수는 미세먼지 현상 규명과 예측, 배출 저감,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분야에 있어서 모두 1위다. 중국과 한바탕 미세먼지 외교전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온 국민이 겨울철 마스크를 쓰더라도 중국의 모르쇠 전략을 뚫기에는 역부족인 셈이다. 과학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지점이라고 해야할까. 후쿠시마 해양 방류에 따른 위험 연구 분석이 일본 연구진에 의해 나왔기 때문이다. 일본 가나자와·후쿠시마·히로사키 대학 연구진이 공동 발표한 논문 내용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110만t을 태평양에 방류할 경우 동해의 방사성 물질이 유의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슘137이 포함된 오염수가 일본 주변 해류를 타고 동중국해로 갔다가, 다시 구로시오 해류와 쓰시마 난류를 타고 동해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오염 물질이 동해까지 오는 기간은 약 1년으로 예상됐다. 아열대 환류 때문에 소요 시간이 좀 더 단축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덧붙이자면 이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연구 자료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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