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단독] “얼굴이 도화지처럼 흉터 자국이”… 홀로 의료소송 벌여 승소한 주부
뉴스종합| 2019-10-17 11:01

성형수술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가 홀로 의료 소송을 준비한 흔적들. 의료기록서, 각종 의학용어, 수술기록서, 감정서 등이 책 한권 분량이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지난 2013년 눈썹 거상술로 생긴 상처. 양눈썹 위쪽에 가로로 5cm 가량의 큰 상처가 났다. 시술한 지 6년이나 지났지만 흉터가 심해 그는 앞머리 가발을 쓰고 다녀야 한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내 얼굴이 도화지도 아닌데 눈썹 위에 초승달을 그려 놨어요. 차라리 흰 도화지가 됐으면 좋겠어요”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눈썹 함몰 상태를 겪고 있는 김진주(49·가명) 씨는 지난 7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났다. 그는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가발을 떼어냈다. 앞머리 가발로 가려 놨던 눈썹 흉터가 드러났다. 양쪽 눈썹 위 갈매기 모양의 흉터가 선명했다. 6년 전 ‘눈썹 거상술’을 받고서 생긴 상처였다. 그는 변호사 없이 홀로 6년간의 의료소송 끝에 최근 승소를 했다.

김 씨가 받은 눈썹 거상술은 눈썹을 올려 처진 눈을 올리는 성형수술이다. 그는 지난 2013년 7월, 40대가 되면서 처진 눈을 올리기 위해 120만원을 주고 이 수술을 받았다. 쌍커풀 수술을 하고 싶었지만 얼굴에 칼 자국이 나는 것이 두려웠던 터였다. 김 씨는 병원에서 “눈썹 문신만 하면 수술 자국이 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눈썹거상술을 선택했다. 이 수술이 김진주(49·가명) 씨의 인생을 이토록 흔들 줄은 몰랐다.

부작용은 수술 직후부터 드러났다. 양눈썹 0.5cm 정도 뜬 위쪽 살갗 좌우 5cm 가량이 움푹 패였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며 지켜보자고만 했다. 하지만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해가 지나서도 좋아지기는커녕 흉터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다른 병원에 가보니 ‘피부 괴사 및 함몰’로 인한 반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상처부위의 피부가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의학용 문신, 자가 지방주입술 등 추가 시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 씨는 충격에 빠졌다. 직업상 계속 사람들 앞에 서야만 했는데 당장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 뒀다.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수술했던 병원을 찾아가 “담당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사과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간호사는 “의사를 만날 수 없고 자신과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사람 얼굴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참 쉬웠어요. 돈을 돌려 받는다고 해서 제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김 씨는 의료소송을 준비하기로 했다. 변호사를 선임할까 고민도 했지만 당장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를 선임할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생겨 변호사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툼의 소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자명한 피해를 입었는데 설마 억울한 판결이 나올까 싶었다”며 “그런데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이렇게 고되고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수술병원을 방문해 수술설명서, 병원에서 찍은 수술 전후 사진, 진료기록부 등을 받았고 CCTV를 요구했다. CCTV는 지워져 없는 상태였다. 이를 토대로 수술 전후 생긴 변화들에 대해 적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처음 수술시 피부 하부연조직층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답변이 나왔다. 명백한 과실이었다.

검찰에 송치되면 끝이다 생각했지만 검찰 조사도 계속 됐다. 그 사이 병원에서는 “형사 고소를 취하하면 합의를 하겠다”며 합의조정을 신청했다. 보상을 하려면 형사취소가 돼야 보험 접수가 된다는 것이었다.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일단 고소를 취하하라는 얘기에 김 씨는 분노했다. 길고 긴 소송을 접고 합의할까 잠시 고민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형사소송으로 이겨 판결문으로 남기겠다는 마음뿐이었다.

6년이라는 긴 싸움 끝에 그는 승소했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서울 서초구 A성형외과 원장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혹시라도 무죄가 나오면 어찌할지 며칠째 잠을 못자며 마음을 졸였던 긴장감이 풀리면서 그간 울분이 다시 터져나왔다. 의학 용어를 풀이하고 홀로 판례를 들여다보며 씨름했던 기억이 스쳤다. 그는 “그래도 진실은 이기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버텼는데 그래도 잘한 일”이라며 “다시는 환자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라고 전했다.

해당 병원은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병원 측은 “현재 2심을 준비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김 씨는 “의료소송이 정말 고된 길이지만 나같은 평범한 주부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통해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사고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며 “그래도 나는 책임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어 운이 좋은 편이 아닌가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환자들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술을 하기 전에 수술동의서, 병원 수술 사진, 진료기록서를 꼼꼼하게 살펴봤으면 한다”며 “무엇보다도 무책임하고 직업윤리를 상실한 의사들이 제발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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