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보이스피싱A-Z ⑤가짜 구속영장의 덫] “나 검산데…대포통장 사기 혐의 당신 구속영장 발부됐다”
뉴스종합| 2019-10-18 11:28

충남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A(25) 씨는 지난 8월 2일 오후 검사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포통장 사기 사건에 연루돼 있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던 A씨도 검사가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수도 있으니 어플을 깔아 확인해보라”고 말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플을 다운로드 받았더니 “악성 프로그램이 발견됐다”는 경고창이 떴다. 순간 철렁했지만 A씨는 포털사이트에 나온 경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식 전화번호로 직접 확인해보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표번호로 연결된 경찰과 검찰 모두 “사기사건 피의자로 곧 구속영장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보이스피싱범들의 덫이었다. 이들이 보내온 어플을 깔면 피해자가 아무리 어디에 전화를 걸더라도 모든 전화는 보이스피싱범들에게 연락이 닿게 된다. 112에 신고를 했어도 그들이 받는다. 처음 연락했던 검사가 구속영장이 나왔다며 메일로 한 링크를 보내왔다. 클릭을 하니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온 구속영장 통지서였다. 생전 처음 보는 ‘구속’ 이라는 단어만 봐도 손에 땀이 났다.

보이스피싱범은 치밀했다. 은행에서 큰 돈을 인출할 때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할 수도 있으니 “승용차를 현금으로 구입해야 할인을 받는다”고 구체적인 지시까지 내렸다. 결국 그는 3일간 10차례에 걸쳐 은행에서 2000~30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이를 현금으로 직접 넘겼다. 피해금액만 1억8520만원이다. A 씨는 갑자기 검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고 연락이 두절되자 그때서야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A 씨가 현금을 인출해 전달했던 금감원 직원 사칭 보이스피싱 전달책은 경찰의 수사 끝에 잡혔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8월 중순 피의자 B(32) 씨를 사기 및 위조공문서 행사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수사 끝에 보이스피싱 인출책 B(32) 씨를 체포하려고 한 순간에도 그는 다른 피해자 C(32) 씨에게서 돈을 건네 받고 있었다. C 씨 역시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경제력이 있는 20,30대 직장인 남성이 보이스피싱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경찰서 한번 가보지 않은 엘리트 코스만 밟은, 어느정도 경제력이 있는 성실한 남성을 노린다.

C 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구속영장을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검사라 하는 이가 계속 협박을 하면 판단력이 흐려져 이조차도 생각을 못했다”고 토로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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