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4차산업 신생벤처, 한국무대 설 곳 없어”
뉴스종합| 2019-10-29 11:24
끝내 한국을 떠나 미국 실리콘밸리로 본사를 옮긴 토르드라이브 [토르드라이브 제공]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규제, 투자 분야에서 미국이나 중국 등과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제발 만들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17년 큐디엠을 설립한 이민상 대표는 깊은 한숨을 쉬며 26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토로했다. 큐디엠은 크기가 수 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인 반도체 입자인 ‘퀀텀닷’ 물질을 개발하는 벤처기업이다. 퀀텀닷은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로, 큐디엠은 이와 관련된 특허 3개를 출원했다. 그러나 창업 2년 만에 그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 대표는 “어렵게 기술을 개발했지만 이를 인정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국내 회사를 찾는 게 개발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고 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외면했고 투자자들은 즉각적인 매출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에 따라 기업 규제가 오락가락하는 불확실성도 기업 경영을 옥좼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한국에서는 투자, 파트너십, 비즈니스 모델 등 신생기업이 도전할 무대가 없었다. 그는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이 연봉 3배를 제시하며 오퍼를 해왔다”라며 “국내에서 창업했다가 결국 짐 싸고 중국으로 향하는 기술자들이 주변에도 부지기수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국내 자율주행차 관련 벤처기업도 일찍이 한국을 떠나 해외로 건너가고 있다. 국내서는 자율주행 자체가 불법인 탓이다.

한국에서 3단계(차량이 스스로 주변 환경을 파악해 운전하고 운전자는 돌발상황 때만 개입하는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수 없다. 이는 3단계 이상의 일반도로 주행 입법은 물론 보험제도를 완비한 미국·독일·프랑스와 크게 대비된다.

이런 이유로 국내 최초로 도심형 자율주행 자동차 ‘스누버’를 개발한 서울대 출신 연구자들도 끝내 한국을 박차고 지난 2017년 미국 실리콘밸리로 본사를 옮겼다.

이들은 지난 2015년 신생 벤처기업인 토르드라이브를 창업했지만 국내에선 규제에 가로막혀 수익을 낼 사업 모델이 없었다.

토르드라이브 창업자인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국내 자율주행 규제 장벽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고 이로 인해 우수한 인재들은 결국 해외로 나가버리고 있다”라며 “한국은 자율주행 서비스가 나올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미국으로 본사를 옮긴 뒤에야 무인차 배송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라며 “처음부터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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