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세상속으로-김용대 서울대학교 통계학과 교수] 살인의 추억과 검사의 오류
뉴스종합| 2019-11-06 11:23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와 가족 3명의 구속을 보면서, 우리나라 검찰의 능력에 대한 경탄보다는 의구심이 더 든다. 검찰이 적시한 대부분의 범죄 의혹이 조국 교수가 장관에 임명되기 한참 전의 일이었는데, 어떻게 수사는 장관임명 이후에 전광석화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최근의 수사결과도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윤모씨는 8차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20년형을 살다가 출소했으며, 이춘재의 자백으로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재심을 준비 중인데, 수사한 경찰뿐 아니라 수사를 지휘한 검사 그리고 재판을 진행한 법원 등 우리나라 사법기관들의 총체적 부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범죄수사는 증거에 기반 한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진행되어야 하나, 종종 감과 직관에 기반한 예단을 바탕으로 진행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확증편향에 빠져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든다. 확증편향이란 선입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수집하는 것으로 인간이 빠지기 쉬운 논리적 모순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물가가 올랐다고 느끼는데, 이는 물가가 오른 상품만 기억하는 확증편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고 과학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과학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데이터 과학에서 수사기관이나 변호사가 흔히 범하는 논리의 오류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OJ 심슨 사건이다. OJ 심슨은 은퇴한 유명 미식축구 선수였는데 1994년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 재판에서 OJ 심슨의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배심원을 설득하였다. “부인을 학대한 남편 중 부인을 살해할 확률은 1/1000보다 작습니다. 따라서 OJ 심슨이 부인을 학대했다고 해도 부인을 죽였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변호사는 이러한 논리로 배심원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고 OJ 심슨은 무죄가 되었다. 물론 이후에 있은 민사소송에서는 유죄를 인정받아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부인에게 지불하여야만 했다.

OJ심슨 변호사의 논리는 대표적인 “변호사의 오류”의 예이다. 재판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과거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증거를 이용하여 판단하고자 하는 사건의 확률을 계산하여야 한다. 올바른 확률의 계산은 다음과 같다. “OJ 심슨은 부인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리고 학대당한 부인이 살해되었습니다. 남편에게 학대당한 부인이 살해되었을 때, 그 범인이 남편일 확률은 무려 97%나 됩니다.” 만약 그 당시 검찰이 데이터과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OJ 심슨은 무죄로 풀려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검사(prosecutor)의 오류’도 있다. 영국의 샐리 클락이라는 여성은 자신의 두 자식을 연속해서 죽였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클락의 첫번째 아이는 출생 11주만에 죽었고 두 번째 아이는 8주째에 죽었다. 클락은 두 아이 모두 갑자기 급사했다고 주장하였다. 검사는 소아과 의사로부터 받은 “우연히 두 아이가 갑자기 죽을 확률은 거의 1/73,000,000”이라는 계산을 바탕으로 클락을 진범으로 확신하였고 이러한 논리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져서 클락은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이 된다.

하지만 이후에 검사가 계산한 확률을 바탕으로 한 판결에는 큰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난다. 두 아이가 급사할 확률도 낮지만, 두 아이가 엄마한테 살해당할 확률도 매우 낮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이 두 확률을 비교했었어야 한다. 유죄판결 이후 통계전문가에 의해서 확률이 다시 계산되는데, ‘엄마가 두 아이를 연속으로 살해할 확률’은 ‘두 아이가 연속적으로 갑자기 급사할 확률’보다 9배 정도 낮다는 결론이 나왔다. 새로운 확률계산을 바탕으로 상급 법원은 클락을 무죄로 풀어주지만, 이미 알콜중독자가 된 클락은 출소 이후 4년 만에 알콜 과다섭취로 사망한다.

수사기관 뿐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데이터 과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요즘 같이 국론이 극적으로 분열된 상황에서는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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