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현장에서] 탈원전 다음 청구서는 국민
뉴스종합| 2020-03-16 11:38

“세계 최고라 자부했던 원전기술이 하루 아침에 천덕꾸러기가 됐습니다. 기술력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았는데 완전히 꺾였습니다.” -두산중공업 직원

“한국은 일본도 프랑스도 인증받지 못한 원전 설계·조달·시공(EPC)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내신·수능 완벽한데 아버지가 대학가지 말라고 하는 격입니다.”-국내 원전 전문가

두산중공업의 ‘일부 휴업’ 검토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서는 이같은 한탄이 흘러나왔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유일의 원전 주기기 제작업체다. 자원 없는 나라에서 에너지 안보를 지키겠다며 정부가 지난 40년간 국가적 지원으로 구축한 한국 원전 산업의 핵심기업이다.

그런 기업이 경영난 타개를 위해 휴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극약처방이다. 지난해 임원 절반이하 감축·2400명 순환휴직·250명 계열사 전출에 이어 지난달 2600명 대상 명예퇴직 조치도 역부족이었다. 두산중공업 노조는 휴업 결정에 격렬히 맞서고 있다. 이번주 상경투쟁도 예고됐다. 사측은 그래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두산중공업의 경영악화 원인은 복합적이다. 글로벌 대형 설비산업 침체와 소극적인 사업재편, 무리한 계열사 투자가 맞물렸다. 하지만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것이 결정타였다.

탈원전 정책으로 당초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됐던 원자력·석탄화력 프로젝트가 전면 백지화된 탓이다. 신한울 3·4기 등 10조원 규모의 수주 물량이 증발했다. 두산중공업의 현재 매출은 2012년 고점 대비 50% 아래로 떨어졌고 영업이익은 17% 수준에 불과하다. 급격한 에너지정책 전환은 40년 공들여온 ‘원전 생태계’도 붕괴시켰다. 최대 3000여 개 협력사와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10만명이 직격탄을 맞았다. 우수 인력들이 대거 해외 기업으로 옮기며 핵심기술 유출사태도 속출했다.

한국의 원전 기술력과 안정성은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한국의 3세대 원전인 APR 1400은 미국 원자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 인증을 받았다.

미국 외 기업이 NRC 인증을 받은 것 두산중공업이 최초다. 원전 기술력이 하강하는 국면도 아닌 상승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륙하는 비행기를 끌어내렸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신한울 3·4기 원전 건설을 재개해 출구전략을 위한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귀닫은 정부다. 지난해 탈원전 반대 국민 서명 60만명에 이르렀지만 요지부동이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로 에너지원을 대체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공급안정성 우려로 에너지 안보 불암감이 커지고 있다.

탈원전 폐해는 에너지 산업의 종속과 전기요금 인상으로 귀결된다. 값싼 원자력으로 연간 수조원대 영업이익을 냈던 한국전력은 지난해 1조원대 적자를 냈다. 4월 총선이 지나고 하반기엔 전기료가 인상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탈원전 청구서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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