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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조사 전문가 "전례없는 공중보건 위기, 지금 필요한 건 유연함과 창의성"
뉴스종합| 2020-03-30 09:40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요즘 자주 언급되는 직업이 하나 있다. 바로 ‘역학조사관’이다. 평상시였다면 살면서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할 정도로 생소한 직업군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 희소한 직업에 대해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게 했다. 공교롭게도 감염병이 유행할 때 마다 이들이 소환된다.

탁상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교수(52·사진)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서 역학조사관으로 활동한 역학조사 전문가다. 2009년 미국에서 신종플루를 경험하기도 했다. 탁 교수에게 역학조사관에 대한 오해와 필요성, 그리고 현재 한국과 미국의 방역 대응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Q: 역학조사관을 단순히 확진자와 접촉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미국에서는 ‘Field epidemiologist’, 즉 ‘현장역학조사관’이라고 한다. 역학조사는 정해진 단계에 따라 이뤄진다. 우선 어느 지역에서 유행이 있는지 확인한다. 다음으로 다양한 환자 케이스와 유사 의심환자 등을 찾아 환자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 다음 정의에 맞게 환자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면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다. 지금 상황을 예로 든다면 환자들이 어떤 상태에서 전파력이 높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 것이다.

역학조사는 매우 과학적인 검증 과정을 따른다. 이를 통해 질병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고 예방 대책을 세우는데 활용한다.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도 역학조사의 한 과정이다. 하지만 이것이 역학조사관 업무의 전부는 아니다. 이건 경찰이나 행정직원도 할 수 있다. 역학조사관은 현장에서 전문가의 시각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전문 분야에 따라 수집하는 정보도 다르고, 정보를 해석하는 시각도 다르다.

Q: 국내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관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경험에 비춰 어느 정도 문제가 있고, 어떤 점이 보완 되어야 하나.

한 명의 역학조사관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투자,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초기에 확진자 수가 갑자기 늘면서 이들의 동선을 파악하는데만 역학조사의 역량이 집중됐다. 현장에서 감염병 차단을 위한 답을 찾는 시간이 부족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감염병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공중보건위기 상황을 대비해 마스크, 백신과 같은 국가전략비축물자를 구비하고 있다. 역학조사관에 대한 투자와 대우도 좋다.

한국도 메르스와 이번 코로나 상황을 거치며 역학조사관의 필요성을 인지했고 늘릴 것이라 예상한다. 다만 단순히 월급을 많이 주고 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으로는 좋은 자원을 끌어올 수 없다.

역학조사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전문적인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가로 키워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공무원 조직에서 말단으로 보고서만 쓰는 것으로는 금세 번아웃(burnout) 되어 나가 떨어진다.

Q: 현재 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도 크게 늘고 있다. 좋은 방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건가.

시스템이 있더라도 이를 작동시키는건 행정부다. 그런 점에서 현재 미국의 문제는 행정부에 있다. 약 3~4주 전 워싱턴주 한 교수가 코로나 진단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를 FDA에 승인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정부가 거절한 셈이다.

모든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한국보다 관료주의가 더 심하다. 중국에서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부터 준비했어야 했는데 안이하게 생각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와 같은 경제 규모 상위권 국가들은 한국보다 의료 시스템이 발달했다. 다만 이런 전염병의 확산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자세가 부족했다.

Q: 현재 한국의 보건당국은 방역 대응을 잘 하고 있다는 건가.

솔직히 공무원 조직이 유연함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규정에 따라 행동하고,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질병관리본부가)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특히 드라이브스루(승차 진료)와 같은 기발한 방법을 실행에 옮긴 창의성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수용해 적용했다는 점이 좋았다. 이처럼 공중보건 위기와 같은 상황에서는 유연함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Q: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스크 대란 현상은 어떻게 보나.

마스크 대란은 한국적인 특성이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이해한다. 다만 우선순위는 있어야 한다. 마스크가 가장 필요한 대상은 누구이며, 먼저 공급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당연히 우선순위는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해 의료진이 감염되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되고 고스란히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진다. 일반인이 보건용 마스크인 N95(KF94)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오히려 마스크가 풍족한 편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우리보다 마스크가 부족할 것이다.

Q: 코로나도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 것이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 상황 이후 무엇을 배워야 하나.

방역을 위한 전문가나 기관을 계속 양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비한 의료자원 집중 등도 논의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되짚어보고 개선하는 시간도 필요할거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건 메르스 때도 그랬지만 이런 위기상황이 닥치면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에 대해 희생만 강요한다는 것이다. ‘고생한다’, ‘고맙다’와 같은 말로만 해결될까. 제도적으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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