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특별기고] 방역만으론 자영업의 눈물을 닦을 수 없다
뉴스종합| 2020-04-23 11:34

세계 언론의 찬사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높은 시민의식, 투명성, 민주주의는 우리와 관계없는 서구 복지국가를 묘사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구 언론들은 한국이 성공적인 방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한국의 높은 시민의식, 투명성,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상황만 아니라면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춤출 기분이 아니다. 아니, 불편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서구 선진국조차 감히 하지 못했던 선거를 치러낸 이 탁월함이 크게 보일수록 불편한 마음을 가늠하기 힘들다.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우리가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데 정신을 온통 팔고 있던 사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방역을 위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영세자영업자는 매출이 폭락하면서 폐업의 위기에 몰렸다. 하루 장사로 하루를 먹고사는 영세자영업자에게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쩌면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다.

우리의 안전이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염병으로서 코로나19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생존을 위협하지만, 경제적 위험으로서 코로나19는 영세업자와 같은 취약계층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안전을 보장받는다면, 이는 공정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자영업자 대책이라곤 저리에 돈을 빌려주거나, 이자 납부를 연장해주고 공공기관의 건물 임대료를 찔끔 내려주는 것이 고작이다. 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당장 돈 들어갈 곳이 한둘이 아닌데, 정부는 싼 이자에 빚을 내어 줄 테니 버텨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황이 나아지면 열심히 벌어서 갚으라고 한다.

말도 되지 않은 정책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동네 음식점을 찾지 않았던 사람들이 위기가 지난다고 외식을 두 배로 할 리가 없다. 더욱이 한 번 폐업한 자영업자가 다시 자영업을 시작하는 것은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영업자에게 코로나19라는 쓰나미가 닥쳤는데, 정부는 대출이라는, 그것도 한 참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대출이라는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과 IMF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처럼 정부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자영업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코로나19 위기에 맞서 정부가 민주주의, 투명성, 높은 시민의식이 진실이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유일한 길이다. 눈과 귀가 있다면 왜 서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영업을 살리기 위해 투여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서구 언론의 찬사에 으쓱해졌다면, 우리 모두가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 소득주도 성장국가가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세상이 아닌가. 진심이라면, 다른 선택은 없다. 영세자영업자의 빚만 늘리는 실망스러운 대책이 아닌 위기에 처한 모든 영세자영업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되갚을 필요 없는 긴급운영자금을 현금으로 즉시 지원해라. 자영업을 살려라. 이것이 국민의 명령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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