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원격수업은 ‘부모 개학’인지…힘들다, 힘들어”
뉴스종합| 2020-04-23 11:43
사상 첫 온라인 개학을 한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염리동 서울여고에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박해묵 기자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가정에서 용산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신입생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노트북 화면을 통해 온라인 입학식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

#.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최 모씨는 이달 20일부터 원격수업이 시작됨에 따라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하루에 30분씩 두번 EBS 방송을 시청하게 하고, 학습꾸러미에 안내된 학습도 지도하고 있다. 매일 아침 ‘클래스팅’을 통해 출석을 하고, 담임선생님이 클래스팅에 매일 학습할 과제를 올려주면 간단한 답글을 다는 것도 그의 몫이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하다보니 일주일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엄마도 아들도 지친다.

최씨는 “장기간의 개학 연기로 인해 등교개학이 어려운 만큼 원격수업을 시도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해 보이지만, 학부모의 부담이 과도해 ‘부모 개학’이나 다름이 없다”며 “전례없는 개학 연기 및 원격수업으로 맞벌이 가정들은 거의 초토화된 분위기인데,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국 초·중·고등학생 540만명이 일제히 온라인 수업을 시작함에 따라 사상 초유의 원격수업 시대를 맞게 됐다. 원격수업은 등교수업과 병행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세계 대부분 국가들도 학교를 폐쇄하고 원격수업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원격수업이 처음 진행되다보니 수업의 질과 내용, 시스템 오류 등의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통해 본 원격수업의 시사점을 짚어본다.

▶한국 ‘IT인프라’ 최고 수준…‘학습 격차’는 심화=지난 달 23일부터 원격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는 정보통신(IT) 인프라 부족 탓에 전체 초등학생의 40%이상, 고등학생의 10% 이상이 수업에 접속하지 못했다. 무기한 휴교에 들어간 프랑스에서는 원격수업을 시작한 지 2주가 넘은 3월 말까지도 10% 가량이 원격수업에 제대로 접속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전체 학생의 5~8% 가량이 수업에 제대로 접속하지 못해 대안 마련에 나섰다.

등교 개학 후 집단감염 발병으로 다시 재택학습으로 전환한 싱가포르는 학생들에게 온라인 학습 자료와 인쇄물 등을 제공해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교직원이 학습 진도를 매일 점검하는 형태로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은 일부 학교에서 원격수업을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원격수업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지난 9일 고3·중3을 시작으로 20일에는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생 540만명이 원격수업을 시작했다. 원격수업이 시작된 뒤 열흘 가량 접속 장애 등의 문제가 나타나면서 혼란을 겪자 교육부는 한국의 LTE 다운로드 속도는 북미와 영국의 3배, 일본과 홍콩의 3.5배 이상이며 학생들의 컴퓨팅 사고력도 미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선진국을 넘어 세계 1위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여기에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힘을 합해 원격수업의 안정적인 운영을 지원하고 있고, 국내 교사들의 온라인 강의 및 세미나 참여 비율도 90.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5.7%) 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보다 먼저 원격수업을 도입한 해외 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교육부의 항변은 일견 맞는 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2단계 온라인 개학에 따른 원격수업 참여율은 평균 98.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참여율이 높다고 해서 원격수업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일러 보인다.

핀란드에서 긴급히 도입된 원격교육은 지난 한달 간 교육에서의 격차를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교라는 비슷한 공간이 아닌 소득 격차가 다른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스마트기기 보유의 차이, 컴퓨터 등 디바이스를 다루는 실력의 차이, 학부모의 지원이 가능한지 여부 등에 따라 학습 격차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학교나 교사의 역량에 따라 쌍방향 수업을 하는 곳도 있지만, 단순 영상만 보는 등 벌써부터 학습 격차에 대한 불만이 높다. 학습격차를 줄이기 위해 온라인 보조교사 도입이나 안전하게 공부할 환경 제공, 동일한 콘텐츠 제공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격수업, ‘기대’ 낮추고 ‘학부모 부담’ 줄여야=원격수업은 대면교육이 갖는 장점을 지니지 못한다. 교육의 질이 어느 정도 저하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해외 각국에서는 원격교육에 대해 ‘최소한’의 목표를 설정하고 교사나 학부모, 학생들의 부담을 가능한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취약계층이나 의사, 공무원 등 사회 필요노동인력 자녀들의 등교를 허용하고 있다. 급식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식사를 제공한다. 핀란드에서는 초등 1~3학년의 등교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학부모들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이달 29일까지 모든 학교의 문을 닫기로 한 미국 뉴욕주의 경우, 원격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습자료나 과제를 제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워싱턴DC에서도 온라인 학습자료와 과제를 나눠주는 수준이다. 온라인 화상 및 실시간 전화 수업은 장애학생 등 취약계층에게만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원격수업을 시작했지만, 미국처럼 강의 영상과 학습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을 위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정규수업 시간표대로 실시간 원격수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 같은 해외 사례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교육부는 이 같은 원격수업 도입 경험을 아랍에미리트(UAE)에 공유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하지만 원격수업은 등교수업과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학습이 이뤄지도록 과중한 과제 부담을 줄여주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원격수업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우선 ‘부모개학’이라는 오명부터 벗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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