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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물가 21년만에 최저…수요부진 악순환 ‘디플레 공포’
뉴스종합| 2020-05-04 11:03

수요 측면에서 기조적인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저물가 기조가 코로나19 영향으로 가속화된 셈이다. 경기 활력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떨어진 탓에 향후 경기 회복은 그만큼 더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일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식료품·에너지 제외지수(근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1% 상승했다. 지난 1999년 12월 0.1%의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였다.

역대 최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던 지난해에만 해도 근원물가는 0.7% 상승했다. 올 들어서도 기저 효과 등 영향으로 1월 0.9%, 2월 0.6%, 3월 0.7%를 유지해왔지만 이달 0.1%까지 추락했다.

연간으로는 21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1~4월 근원물가의 전년 누계비 상승률은 0.5%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한국은행의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 0.7%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연간 -0.2%의 근원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던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셈이다. IMF 외환위기 수준까지 물가가 떨어진 것은 그만큼 경기가 얼어붙었다는 의미다.

근원물가는 소비자물가에서 국제유가, 농산물 값 등 예측이 어려운 공급 측 요인을 뺀 수치로 수요 측면에서 기조적인 물가 추세를 살펴볼 수 있다.

정부는 정책 요인을 근원물가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으며 무상교육에 따른 고교납입금 하락과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3월부터 6월까지 한시적으로 70% 내린 영향 등을 언급했다. 안형준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디플레이션은) 경기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해 수요 부족에 따라 가격이 하락하는 반면 이번엔 그게 아니라 고교 납입금, 학교 급식비 하락 등 정책적 요인이 컸다”며 “여기에 코로나19로 외식 물가의 상승폭이 둔화된 영향도 일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책 효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코로나발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과 경기침체) 공포를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더뎌지고 있지만 소비 회복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기침체 공포가 계속해서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면 위축된 소비가 정상 수준으로 복귀하기 어렵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은 수준에서 고착화될 경우 ‘수요부진-저물가’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통해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물가하락을 예상하면 가계는 소비를 미래로 이연시키고, 기업은 투자, 생산을 축소한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저물가 기조가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는 그 수준이 지나치게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1분기 기준 한국보다 근원물가가 낮은 국가는 36개 회원국 중 3개 국가뿐이다. 포르투갈(0.2%), 스위스(0.2%), 이스라엘(0.4%) 등이다. 일본은 한국과 동일한 0.4%를 기록했다.

앞으로 1년 동안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예측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4월 기준 전월비 1.7%로 3개월 연속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순수하게 수요측 요인만 담고 있는 근원물가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진다면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될 것”이라며 “다만 코로나19 영향을 지켜보기 위해 아직은 한, 두달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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