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보약공기 흠~ 골목인심 푹~…이 만한 힐링이 또 있을까요
라이프| 2020-05-12 11:03
치악산 최고봉우리 비로봉 정상.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묵어간 산청 이사재.
익산 Go100Star의 로맨틱한 포토존.
당진 아미미술관.
여수 돌산공원에서 내려다본 돌산대교 야경.

치악산은 구렁이에게 잡혀 먹힐 뻔한 꿩이 자신을 구해준 선비를 살리려 머리로 종을 울려 죽음으로써 은혜를 보답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꿩 치(雉)자를 쓴다. 치악산은 금강송과 구룡연, 세렴폭포 계곡이 빚어내는 생태의 청정도가 국내 최고 수준이다.

DMZ 혹은 제주 곶자왈을 연상케하는 정글이 금강송 사이사이 나타나는 것도 생태 보존이 잘 됐기 때문이다. 봄을 맞아 ‘거리를 둔’ 힐링족들이 ‘보약 공기’ 마시러 이곳을 찾는데, 청정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정상인 비로봉 꼭대기에 서면 구름을 발 아래에 두고 동양화 속 주인공이 된다.

원주시가 이 보약같은 치악산 공기를 산 밖 민가로도 끌어오겠다는 야심찬 플랜을 실행한다. 폐철도 원주역∼반곡역 9㎞ 구간에 ‘치악산 바람길 숲’을 조성한다는 것. 행정가들이 인문학, 생태학, 기상학 공부까지 마쳤다. 철도 정원 숲길, 자연풍경 숲길, 단풍숲길이 조성되면서 추가로 식재될 이팝나무, 미루나무, 메타세콰이어 등이 치악산 청정공기의 이동을 호위한다.

한국관광공사가 ‘이달에 가볼만한 곳’ 추천지를 108일만에,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백팔번뇌 끝에 추천한 곳은 ▷원주 미로예술시장과 치악산 ▷세종대왕 숨결 가득한 여주한글시장 ▷당진의 뉴트로 감성 여행 ▷익산 문화예술의거리 ▷여수 천사벽화마을 ▷산청의 남사예담촌과 동의보감촌이다.

건강, 마음의 양식, 그간 참아왔던 문화예술 향유, 골목시장의 부활 등 다목적의 취지가 읽힌다. 한국관광공사는 사소한 방심이 큰 민폐로 이어지지 않게 문화관광을 향유하는 여행자 수칙 준수를 거듭 당부했다.

▶원주=미로(迷路)에 빠져들수록 흥미롭고 볼거리 먹거리가 많은 미로예술시장은 원주중앙시장 2층에 있다. 외모는 1970년 건물 그대로이지만, 속살이 매력적이다. 10년전쯤 부터 청년들이 몰려들며 문화 관광형 시장과 청년몰을 만들었다. 공방과 카페, 문화 공간, 정든 맛이 어우러진 뉴트로 분위기에, 모든 세대가 만족하는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가’동엔 오래된 양복점이나 금은방이, ‘다’동은 체험 공간들이, 라동은 백종원에게서 한 수 배운 골목식당들이 즐비하다. ‘나’동은 작년 화마를 입고, 현재 재건중이다. 벽화와 조형물에서 원주 청장년들의 센스가 느껴진다. 중앙선 폐선 구간 중 간현~판대역 사이에선, 갈때 풍경열차, 올때 레일바이크를 탄다. 치악산을 빼놓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여주=여주의 두 영릉을 잇는 왕의 숲길을 미음완보 하노라면 자존감이 치솟는다. 두 임금 모두 성군이라 더 그렇다. 영릉 & 영릉 유적 종합정비사업 때문에 3년 가까이, 다 보지 못했던 여주 영릉(英陵, 세종대왕릉)과 영릉(寧陵, 효종대왕릉)이 오는 16일부터 국민들에게 더 보여준다.

세종대왕릉 능침공간 향·어로·정자각 등 제향공간을 새로 개방한다. 7월 1일부터는 재실 등을, 10월 9일부터는 효종대왕릉 연지 주변 경치가 열린다. 여주엔 벽화와 귀여운 왕의 동상을 비롯해 세종아이콘으로 치장한 한글시장이 있다. 가나다라 조형물, 찹쌀로 만들어 달콤하고 쫀득한 자음모양의 한글빵, 동네꼬마 녀석들의 말뚝박기 벽화가 여행자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여주 주민이 쓰던 물건과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훌륭한 역사콘텐츠가 되어 ‘여주두지’에 모여있다. 사연이 주는 정감과 가치는 위인과 필부필부의 차이가 없다. 능 자체는 효종대왕릉이 더 멋지다는 사람이 많다. 다층석탑과 다층전탑 등 보물이 즐비한 신륵사에서 남한강을 내려다 보면, 사는게 뭐라고, 엊그제 싫은 소리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당진=면천읍성 안의 ‘성안마을’엔 상당산성처럼 번듯한 식당도, 낙안읍성처럼 예스러운 초가도 없다. 대신 손때 묻은 집과 소박한 식당, 이발소, 전파상 등이 골목골목을 채운다. 시곗바늘을 반세기 정도 거꾸로 돌린 듯, 때 묻지 않은 풍경들이다.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과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 책방과 나란히 자리한 ‘진달래상회’는 이곳을 감성 여행지로 만든 주역이다. 미술관과 책방에는 예쁜 휴게 공간이 마련돼 여행자를 위한 쉼터로도 손색이 없다.

면천읍성 성안마을의 따뜻한 감성을 잇는 아미미술관,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만나는 왜목마을, 실제 전투함과 구축함 안팎을 다양한 전시 공간으로 꾸민 당진항만관광공사(옛 삽교호함상공원)도 놓쳐선 안 될 곳이다.

▶익산=익산문화예술의거리는 20년전까지만 해도 ‘작은 명동’으로 통했다. 2000년대 신도시 개발과 함께 상권이 조금씩 옮겨 가자 익산시가 낡고 버려진 상점을 문화 예술인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빌려줬다. 갤러리와 공방이 하나둘 문을 열고, 익산아트센터가 운영하는 Go100Star(고백스타)에 익산근대역사관까지 들어서면서 거리는 생기를 되찾았다.

근대의 뾰족한 삼각 지붕을 얹은 상가, 낡은 담벼락을 갤러리 삼은 흑백사진 등 골목 구석구석에 저마다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 선물처럼 숨어 있다.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된장짜장면과 명장이 선보이는 빵까지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화재가 된 기차역 춘포역사, 로맨틱한 달빛소리수목원에 들러야 유네스코 도시 익산여행이 완성된다.

▶여수=여수 엑스포공원에서 좌회전하면 오동도, 우회전해 자산공원 해안길을 휘감아 돌면 고소동 벽화마을을 만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우영 본부로 쓰던 진남관에서 출발해 고소동을 거쳐 여수해양공원까지 거리가 1004m라서 천사벽화골목으로 불렀다. 그 길에서 통제이공 수군대첩비, 마실 나온 주민,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 만화가 허영만 화백 작품의 다양한 주인공 등을 만난다. 특히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사라졌다 나타나는 여수 앞바다와 돌산대교, 거북선대교 조망이 일품이다. 낭도젖샘막걸리는 고흥과 여수 사이에 있는 낭도 만의 발효과학이 발휘돼 최불암 선생의 극찬을 받은 유산균 술이다. 여수의 야경을 보노라면 돌산공원 전망대와 돌산대교가 열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산청=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된 남사예담촌은 품격 있는 고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직 후손들이 사는 곳이 많아 현대와 조선시대가 공존한다. 옛담 사이로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교차해 X자 형태로 겹친 모습은 서로 의지하는 듯 정겹다.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이다. 마을 한가운데엔 차만 몇 대 서 있는 넓은 공터가 있는 데 “비워야 채워지니 집도 논밭도 만들지 말라”는 선조들의 뜻을 따랐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사수천(남사천)을 건너면 국악계의 큰 별로 꼽히는 박헌봉 선생을 기념한 기산국악당, 백의종군하는 이순신 장군이 묵어갔다는 산청 이사재, 유림독립기념관까지 두루 다녀올 수 있다. 조식 유적과 성철스님의 겁외사도 한 코스로 묶인다. 두 말 필요 없는 산청 동의보감촌엔 외국인들 발길이 적은 지금이 풀코스 건강기운 흡입하기에 좋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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