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업 정상화됐는데… “실패 전력 있잖아” 낙인 찍는 금융
뉴스종합| 2020-05-29 11:04
[사진=28일 서울 캠코 양재타워에서 열린 '시장 중심 구조조정 활성화'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우리 회사는 이미 정상화됐는데 은행에 피해를 준 적이 있다는 이유로 대출이 거절됐습니다”

29일 서울 강남구 캠코 양재타워에서 열린 ‘시장중심 구조조정 활성화 간담회’에서는 A 중소기업 경영자의 하소연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는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지원하는 ‘기업구조혁신펀드’를 2차분을 1조원 규모로 조성하는 것을 기념해, 민간 차원의 구조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A사는 펀드의 지원을 받아 구조조정을 성공한 스토리를 전하기 위해 초청됐다.

A사는 건설중장비와 특장차 제조에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로 현대건설기계, 두산인프라코어 등에 납품하고 수출도 하는 관련 업종의 대표 중소기업이다. 2010년 초반까지는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을 정도로 알짜 회사인데다 성장세도 빨랐지만, 이후 건설경기가 침체하고 금융권 차입에 의존해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결국 2014년 부분 자본잠식까지 겪으면서 그해말 회생신청을 했다.

5년여에 걸친 회생 과정에서 1000억원이 넘는 채무의 상당 부분을 탕감받고 일부는 상환했다. 주요 채무자가 회생폐지 신청을 여러차례 할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되살아나는 데 성공했고 지난해 초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출자 지원으로 사모펀드에 인수된 뒤 회생절차를 종결했다. 지난해에는 7년째 이어지던 적자 행진을 깨고 31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권에 한번 박힌 ‘회생기업’의 이미지를 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 사는 수출자금을 조달하고 연 8% 고금리의 회사채를 보다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타기 위해 최근 시중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지만 세 곳에서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A 사 관계자는 “세 곳 모두 회생 과정에서 채무를 탕감받아 은행에 피해를 준 기록이 있기 때문에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는 다른 은행에 네번째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금융권 관계자는 “A 사처럼 회생을 거쳐 정상화된 기업이 회생 전에 거래해왔던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현상”이라며 “코로나19 상황도 있고 해서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 심사 등을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겠지만, 대출 거절의 이유가 ‘회생 전력이 있다’는 것이 된다면 회생 제도의 근본 취지를 위배한 것”이라고 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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