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노벨상 연구성과서 신소재 개발까지…‘팔방미인’ 가속기
뉴스종합| 2020-06-03 11:45
연구자들이 경주 양성자가속기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노벨상의 산실’, ‘희귀원소의 원천’

‘꿈의 기술’ 가속기가 미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속기는 세계적인 연구성과부터 신소재 개발까지 곳곳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가속기는 경제·산업 측면에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어 주요국들도 앞다퉈 투자에 나서고 있다. 대규모 일자리를 양산하고,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의 해결사로도 떠오르며 가속기가 미래 혁신을 위한 필수 기술로 자리매김했다.

가속기는 단적으로 말해 기초과학 연구용 장비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입자’를 발견해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대표적이다.

현재 가속기는 의약품에서부터 식품, 전자제품, 자동차, 항공기, 원자력 등 다양한 산업군에 필수적 장비로 자리매김했다. 가속기를 이용해 경쟁력 높은 산업과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서는 전 세계적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우리나라도 포항에 3세대·4세대 방사광가속기, 경주에 양성자가속기를 운용 중이다. 부산에는 중입자가속기, 세계 최초로 원형가속기와 선형가속기를 결합시킨 한국형 중이온가속기가 내년 완공을 목표로 구축작업이 한창이다.

여기에 정부는 오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충북 청주에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키로 결정했다. 중이온가속기와 신규 방사광가속기가 구축되면 가속기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국내 가속기 활용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가 쓰여질 전망이다.

▶양성자·중이온·방사광·중입자 가속기 종류도 다양=가속기는 노벨상 수상자의 20% 정도가 가속기를 기반으로 한 연구결과로 수상했을 만큼 원자핵이나 그보다 작은 소립자 등을 연구해 미시세계의 물리법칙을 규명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핵심연구시설이다. 가속입자의 종류에 따라 방사광(전자) 가속기, 중이온 가속기, 양성자 가속기로 구분된다.

양성자 가속기는 가장 가벼운 수소 원자의 핵인 양성자를 이용하고 방사광 가속기는 양성자보다 훨씬 가벼운 전자를 활용한다. 반면 중이온 가속기는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자를 이용해 만든 중이온을 쓴다. 또 양성자와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나노미터(nm, 1000조분의 1m) 단위의 세계를 탐구한다.

2013년부터 본격 가동에 돌입한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가속한 양성자를 물질에 조사해 물질을 변화시키거나 중성자를 생산하는 장비다. 양성자를 빛의 속도의 약 43% 수준인 초속 13만km까지 가속시킬 수 있다. 다른 물질의 원자핵과 반응하거나 원자핵을 쪼개 다른 원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플라스틱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거나, 암 진단에 사용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고, 물질의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어 ‘현대 과학의 연금술사’, ‘미다스의 손’으로도 불린다.

나노입자 제조 및 가공, 고효율 전력반도체 소자 개발, 신품종 유전자원 개발, 내방사선 부품 개발, 양성자 암치료 장치 개발,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 등 다양한 연구개발 및 산업 분야에 활용 가능하다.

박원석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양성자가속기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향상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필수”라며 “양성자가속기가 국내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고도화에 앞장설 수 있도록, 파급력있는 연구과제를 지원하고 장비를 확장해 세계 최고의 입자빔 이용 연구개발 플랫폼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소재 등 첨단물질 개발에 필수=방사광가속기는 전자의 속도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끌어올려 방사광을 만들어내는 첨단연구 장비다. 가속기로 만들어낸 빛을 이용하면 일반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없는 물질의 미세한 구조나 살아있는 세포의 움직임까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초고성능 거대 현미경으로도 불린다. 이차전지, 신소재, 반도체 등 에너지 분야와 물리, 화학, 생명공학 등 기초 과학 연구에 폭넓게 활용되며 바이러스 DNA구조 분석에 따른 신약개발에 필수 시설로 꼽힌다.

현재 국내에는 포항에 3세대,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운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6000여명의 연구자, 1600여개 과제를 지원해 세계적 연구 성과를 창출했다. 하지만 폭증하는 연구수요를 감당하는데 한계가 있다. 신규 가속기 구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오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약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충북 오창에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을 추진키로 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실시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기술적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신규 방사광가속기 구축으로 6조 7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 2조 4000억원의 부가가치 창출, 13만 7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는 “일본의 경우 대형 가속기 8대를 활용해 소재·부품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산업계 미래 첨단산업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는게 크게 기여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까지 1조487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조성중인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양성자에서 우라늄까지 다양한 중이온을 빛의 속도로 가속하거나 충돌시켜 물질 구조 변화를 통해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한다. 중(重)이온, 즉 무거운 이온을 가속시키는 중이온가속기는 헬륨(He) 보다 무거운 원자를 이온으로 만든 뒤 가속시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동위원소를 얻는다. 펨토미터 수준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종의 초거대 현미경인 셈이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희귀동위원소빔으로 핵과학, 원자·분자과학, 물성과학, 의생명과학 등 다양한 기초과학분야에서 새로운 차원의 연구를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권면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은 “라온은 가까운 미래에 희귀동위원소 과학을 선도할 수 있는 최첨단 연구시설로 전 세계 과학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면서 “계획대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사업단 모두가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 들어서게 될 중입자 가속기는 의료용으로 주로 활용되는 중이온 가속기의 일종이다. 흔히 ‘꿈의 암 치료기’로도 불린다. 수소보다 무거운 탄소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 그 에너지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없앨 수 있다.

이처럼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양성자가속기, 중이온가속기, 중입자가속기는 연구개발에서 시너지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가속기 건설에 필요한 첨단기술을 국산화하고 다른 영역에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가속시키는 입자가 다르더라도 가속기 구축에 필요한 핵심기술들은 기본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주한 박사는 “방사광·중이온·양성자가속기 등은 각각 역할이 다르지만 이들 가속기 구축이 완료되면 기초연구부터 신약·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계 지원까지 커버가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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