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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포럼] R&D 성과,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뉴스종합| 2020-06-10 11:13

매년 초 실시하는 성과조사에서는 국가 예산으로 지원한 수만건의 연구개발 과제 관련 논문 및 특허, 사업화 등의 결과물을 조사한다.

우리나라는 이 결과물 중에서 특히 경제적 성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으로, 산업기술 R&D의 사업화 비율은 매년 45% 수준으로 조사된다. 이는 기술개발이 끝난 후 5년 이내의 결과물을 조사한 것이며 중장기적 사업화 성과는 수치로 포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최초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설립했다. 출연연의 주목적은 산업현장의 애로기술 해결이었기 때문에 기초·응용연구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선진국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경제 발전에 직접 기여하는 연구개발(R&D)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지난해 일본의 갑작스러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 발표 당시에도 그간의 정부 R&D 투자가 소재기술 자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다행히 민관 합동의 신속한 대응으로 큰 위기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경제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R&D 성과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사업화 성과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부 R&D 지원이 기존 기술을 개량하는 단기 과제에만 치중될 수 있다. 좋은 기술 테마가 연구개발을 거쳐 사업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년에서 수십년이 걸린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부 R&D 성공사례로 꼽히는 GPS, 인터넷 역시 최초 기술개발이 경제적 부로 연결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됐다.

향후 정부 R&D 지원은 과제 성공률에만 연연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의 R&D 예산은 4조1000억원 수준으로 늘어 성과에 대한 기대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위험군 연구개발 지원을 강화하되, 연구가 끝난 결과물에 대해서는 사업화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을 다양하게 터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유관 기관과 함께 ‘사업화 이어달리기’ 체계를 구축하고, 혁신적인 R&D 결과가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R&D 지원 면에서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연금술사(alchemist) 정신으로 혁신기술에 도전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신설해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문제 해결에 매진할 수 있는 R&D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2015년 서울대 공학대학 교수들이 집필한 ‘축적의 시간’이 발간된 이후 우리 산업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축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국가 R&D 성과에 있어서는 여전히 느긋하지 않은 분위기가 남아 있다.

앞으로 국가 R&D는 혁신에 도전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또 그 결과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민간의 힘으로만은 어려웠던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우리 산업이 재도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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