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의도 정치권은 ‘옷’으로 시끄럽다. 수해복구 현장에서 지나치게 말끔한 티셔츠와 신발 또 이와 대조되는 흙투성이 복장이, 본회의장에 나타난 핑크빛 원피스가 논란이 됐다.
반팔에 노타이 와이셔츠가 출근복이고, 또 기능성 등산복과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가 흔한 일상복이 된 요즘 시대와 다소 동떨어진 의상 논란이 여의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를 바라보는, 일반인보다 조금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시각이 만든 결과다.
흔히 패션을 말할 때 T·P·O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의미다.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 논란은 T·P·O에서 시작됐다. 엄숙해야 할 국회 본회의장에 핑크색 원피스가 맞냐는 문제제기다. 20대 대학생 또는 직장인의 출퇴근복이나 일상복으로는 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 복장이지만, 국회 본회의장이라는 장소(place)가 논란을 불러온 셈이다. 지난주 말을 지나며 결론은 문제없다고 난 모양새다. 딱딱한 구두 대신 편한 운동화나 로퍼를 신고 심지어 한여름에는 카라 티셔츠도 입는 달라진 국회 모습에 초미니나 배꼽티도 아닌 평범한 여성 복장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데 여야 정치인, 그리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 의견을 같이했다.
반면 수해복구 현장의 의상은 오해라는 해명에도 여전히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수해복구 현장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에는 노란색 티셔츠와 검은색 장화가 깨끗하게 나타났다. 진흙과 오물로 뒤덮인 재해복구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의복의 기본인 T·P·O에서 상황(occasion)에 어긋났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패션 스타 의원이 탄생하기도 했다. 태영호 통합당 의원이다. 한 재해복구 현장에서 진흙으로 뒤범벅된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지저분했지만 재난이라는 상황에는 매우 적합했다. 여기에 변기커버 같은 소품까지 더해지며 상황(occasion)에 매우 어울리는 복장의 모범답안이 됐다.
위 3개 정치인 복장 해프닝의 공통점은 결국 ‘진정성’이다. 국회의원, 정치인이라고 무조건 무채색 정장만을 입어야 한다는 T·P·O에 관한 과거 고정관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게 류 의원 복장 논란의 교훈이다. 심 의원과 태 의원의 재난복구 현장 옷차림은 단순 T·P·O의 문제가 아닌 ‘진정성’ 여부가 비판과 찬사의 길을 갈랐다.
법안을 처리하고, 나라 돈의 쓰임을 정하고 감독하는 정치인, 국회의원의 일에 더 이상 영국신사 같은 검은 정장과 클래식 구두만이 정답은 아닌 세상이다. 등산복, 레깅스까지 일상복으로 소화할 만큼 달라진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은 정치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라는 말이다.
대신 옷 잘 입는 정치인, 국회의원이 되려면 이제 완화된 T·P·O 대신 ‘진정성’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국회 의사당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진정한 마음을 표현하는 옷차림, 유권자와 만날 때는 높으신 고위대작이 아닌 지역민을 섬기는 일꾼이라는 생각을 표현하는 옷차림이 정치인의 덕목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