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팀장시각] 빅테크의 역습, 축복인가 재앙인가
뉴스종합| 2020-08-25 11:37

유통업계에서 빅테크의 활약이 눈부시다. 그간 가격 비교나 ‘00페이’와 같은 간편결제 등 유통 언저리에서 지원사격만 하던 빅테크 업체들이 이제는 판매자 입점이나 새로운 서비스 도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네이버는 ‘동네시장 장보기’의 확장판인 ‘장보기’ 서비스를 최근 시작했고, 카카오는 산지에서 직접 먹거리를 배송하는 ‘카카오 장보기’를 운영 중이다. 바야흐로 빅테크의 칼날이 유통업계를 정조준한 모양새다. 특히 이들의 신선식품 시장 진출은 뼈아프다. 그간 유통업체들은 공산품은 몰라도, 신선식품 만큼은 어느 업체도 넘보지 못한다고 자부해왔다. 신선식품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매장이나 물류창고 등 오프라인 인프라와 함께 재고 관리, 빠른 배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전자상거래 취급액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황에서도 신선식품을 취급한 곳은 오프라인 인프라가 있는 대형 유통업체 온라인몰이나 쿠팡, 마켓컬리 등 일부 이커머스 업체뿐이었다.

하지만 빅테크의 장보기 시장 진출로, 신선식품 온라인 판매에 관련 노하우가 필요하거나 물류 사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증명됐다. 이미 노하우를 보유한 유통업체를 입점시키거나 외부 물류업체의 풀필먼트 사업을 활용하면 대규모의 투자 없이도 충분히 관련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신선식품에 대한 노하우를 자부하며 빅테크에 대한 경계를 느슨하게 했던 유통업계가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사실 강력한 플랫폼을 보유한 빅테크 업체가 커머스 사업을 확장하는 데에 대해선 이견이 많다. ‘문지기’ 역할을 하는 빅테크 업체가 쇼핑 영역을 파고드는 것은 독점적인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미 유통업계는 검색창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가격 정보를 빅테크 업체에 제공하고, 실제 판매가 이뤄지면 매출 연동 수수료(2%)까지 지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빅테크 업체가 온라인몰 사업까지 확장하면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도 네이버 등 빅테크 업체들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빅테크의 사업 확장에 대한 불만 이전에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과연 유통업계가 빅테크가 지금 하고 있는 것 만큼 소비자 효용을 위해 얼마큼 노력을 해 왔냐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통업계에는 마켓컬리나 쿠팡 등으로 대표되는 ‘메기’들 덕분에 새벽배송, 간편결제 등 소비자들이 열광한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신세계, 롯데 등 온라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한 유통공룡들은 이미 규격화된 온라인 서비스를 따라가는 데 급급하고, 업계 ‘메기’들도 취급 품목을 확대하거나 음식배달 서비스 등 신규 사업으로 눈을 돌린 상황이다.

물론 유통업계의 불만처럼 빅테크의 사업 확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공정 경쟁이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존의 기득권만 주장하다가는 그들이 수년간 지켜온 철옹성을 뺏기는 것이 시간문제일 수 있다. 공정위의 결과를 목 빼고 기다리기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쇼핑 경험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때다. 막다른 골목처럼 보여도 언제나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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