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보기만해도 힐링, 고려때 인자한 늙은 스님 조각품, 국보 된다
라이프| 2020-09-02 13:33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고려 시대 고승(高僧)의 실제 모습을 조각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국보로, 15세기 전염병 전문 의학서적 ‘간이벽온방(언해)’은 보물이 된다.

1100년이나 지난 대사의 좌상 조각은 마치 맘씨 좋은 노승과 정담을 나누는 듯한 친근함을 풍기고, 간이벽온방은 코로나 사태로 시름하는 우리네 마음을 다독인다.

국보로 지정예고된 해인사 희랑대사좌상의 온화한 표정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노승의 얼굴만 봐도 힐링되는 느낌이다.
해인사 희랑대사좌상 옆 얼굴
해인사 희랑대사좌상 정갈하게 포갠 두 손
마치 살아 있는 듯한 해인사 희랑대사좌상은 한달간 심의를 거쳐 국보지정이 최종확정된다.

2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합천 해인사 좌상 조각품은 신라 말~고려 초까지 활동한 승려인 희랑대사(希朗大師)의 모습을 작품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으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 아카데미즘의 거두로 분류되는 희랑은 왕건의 후삼국통일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유사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으며 ‘희랑대사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되고 있다.

이 작품은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乾漆)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고 후대의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방식은 보물 제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처럼 신라~고려 초에 해당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불상조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이어서 희랑대사좌상의 제작시기를 유추하는데 참고가 된다.

건칠(乾漆)은 삼배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든 기법으로, 완성하기 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는 유행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존하지 않는 기법이다.

건칠기법이 적용된 사례가 희랑대사좌상 이후 나타나기는 하지만, 다소 관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오히려 원조인 이 작품은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마르고 아담한 등신대 체구, 인자한 눈빛과 미소가 엷게 퍼진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은 매우 생동감이 넘쳐 생전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탁월하다는 것이 전문과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또 다른 특징은 ‘흉혈국인(胸穴國人, 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는 그의 별칭을 상징하듯, 가슴에 작은 구멍(폭 0.5cm, 길이 3.5cm)이 뚫려 있는 것이다. 이 흉혈(胸穴)은 해인사 설화에 의해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頂穴, 정수리에 난 구멍)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하며, 유사한 모습을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1024년, 보물 제1000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16세기 전염병 전문의서 간이벽온방(언해)

보물로 지정 예고한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언해는 1525년(중종 20년) 의관(醫官) 김순몽(金順蒙), 유영정(劉永貞), 박세거(朴世擧) 등이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역병(疫病, 장티푸스)이 급격히 번지자 왕명을 받아 전염병 치료에 필요한 처방문을 모아 한문과 아울러 한글로 언해(諺解)해 간행한 의학서적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본이며 1578년(선조 11) 이전 을해자(乙亥字)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책의 내용을 보면 병의 증상에 이어 치료법을 설명하였고, 일상생활에서 전염병 유행 시 유의해야 할 규칙 등이 제시되어 있다.

‘선사지기(宣賜之記, 왕실에서 하사했음을 증명해주는 인장)’가 찍혀 있고, 앞표지 뒷면에 쓰인 내사기(內賜記)를 통해 1578년(선조 11)년 당시 도승지였던 윤두수(尹斗壽, 1533~1601)에 의해 성균관박사 김집(金緝, 1610~?)에게 반사(頒賜:임금이 신하들에게 물품 등을 내려줌)된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이 책이 늦어도 1578년(선조 11년) 이전에 간행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의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동종문화재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판본임을 알 수 있으며, 그 전래가 매우 희귀해 서지학 가치 또한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간이벽온방(언해)은 조상들이 현대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는 서적일 뿐 아니라 조선 시대 금속활자 발전사 연구에도 활용도가 높은 자료인 만큼 보물로 지정해 보존‧관리하는 것이 타당하고 판단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선조때 녹훈된 이항복 등 신구 공신들이 1604년 11월 연회를 개최한 장면을 그린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도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이산해, 류성룡 등은 불참해 58명이 참석했고, 병풍에 58명을 헤아릴수 있도록 묘사됐다.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도. 그림에 묘사된 행사는 1604년에 거행됐다.

넓은 차양 아래 3단의 돌계단 위에서 공신들이 임금이 내린 술을 받는 장면이 중앙에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나무 옆에서 음식을 화로에 데우는 모습 등 준비 장면이 그려져 있다. 원경의 눈 덮인 설산(雪山)과 앙상한 나뭇가지 표현은 상회연 개최 시기인 음력 11월 상순이라는 계절감을 전달해 주며, 필치가 매우 세밀하고 단정하다. 17세기 회화 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됐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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