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소통의 중요성’ 깨달아”
“누군가에게 도움 되고 싶어 의사가 되기로”
“‘청진기 하나로 진료할 수 있는’ 내과 선택”
감염내과는 스승의 권유로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30년 동안 감염병 전문가로 삶을 살아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그는 주말과 상관없이 하루에 많게는 30통까지 전화를 받는다. “조용히 공부만 했던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아이”라고 했던 김 교수는 “지금은 인터뷰도 하고, 생방송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노력의 이유는 ‘국민들에게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김 교수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번처럼 갑자기 200~300명씩 확진자가 나오면 그날은 전화가 쏟아진다”며 “가급적 다 받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동안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AI(조류독감), 메르스 등을 겪으면서 전염병은 방역 문제기도 하지만 소통 문제기도 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퍼지는 시민들의 잘못된 정보, 공포, 갈등을 마주한 김 교수는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국민들이 올바른 정보를 알아야 예방법도 알고 두려움도 가지고 방심도 피할 수 있다”며 “그래서 올 1월 코로나19 사태가 생기고 나서, 시니어로서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통에 적극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는 김 교수도 어린 시절엔 “지극히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그는 “예전에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어린이 회장에 뽑혔는데, 숫기가 없어 한 번도 앞에 나가 회의를 주재하지 못해 늘 콤플렉스였다”며 “물론 여전히 내성적이긴 하지만, 국민들에게 감염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익에 있어선 그러지 않으려 많은 노력 중”이라고 떠올렸다.
김 교수는 ‘베이비부머 시대’였던 1959년 태어났다. 10살에 서울로 올라와 ‘유학’ 생활을 시작한 김 교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법대’와 ‘의대’를 택하는 갈림길에 섰다. 그는 의대를 선택한 이유로 “가만 보니 판·검사는 오판 한 번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칠 수도 있겠더라”며 “의사는 적어도 병든 사람, 아픈 사람을 고쳐줄 수는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도움은 줄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의사가 됐다”며 덤덤히 말했다.
김 교수가 30년을 몸 담아온 감염내과를 택한 이유는 ‘스승의 영향’이 컸다. 그는 의대생 시절 A. J. 크로닌의 소설 ‘성채’를 읽고, “청진기 하나만으로 어디서든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내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군의관 시절, 국군수도병원 호흡기전염병과장을 하며 만난 고(故) 박승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전 국가신종플루대책위원장)는 그에게 “감염내과를 전공해 보라”며 권유했다. 3년 후 김 교수는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감염내과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김 교수는 “감염내과는 인기 있는 과도 아니고 대접받는 과도 아니라, 결국 사명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하고 또 그게 정부 정책에 영향을 줄 때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그러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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