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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회생절차 ‘청산 수순 새 출발점’ 인식 확산”
뉴스종합| 2020-09-07 11:36

최근 수년 간 회생기업의 정상화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돼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회생 절차를 ‘망하는 수순’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다만 아직 투자자들의 심리적 부담감이나 법적 제한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회생, 회사 결단만 있으면 제도는 적극 지원”=헤럴드경제가 최근 만난 국내 대형 로펌 소속 10여명의 구조조정 자문 변호사들은 서울회생법원이나 금융당국 등 법정관리 제도를 좌우하는 기관들이 최근 수년 간 적극적으로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고 입을 모았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이 대표적이다. 기존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회생절차가 개시된 회사에 대한 신규 대출(DIP파이낸싱) 채권은 회생단계에서는 공익채권으로서 임금과 동일 순위(최우선)로 변제권을 인정받지만, 회생절차가 실패해 파산절차로 넘어갈 경우에는 우선변제 권리가 사라진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돈을 빌려주길 꺼린다는 지적이 수년 전부터 이어졌다.

결국 기업 구조조정 논의가 활발해진 지난해 국회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고, 파산 단계에서도 우선변제권을 인정하는 개정안이 지난 2월 공포됐다. 법무법인 광장의 이완식 변호사(사법연수원 19기)는 “투자자가 돈을 빌려줄 때 ‘파산하면 어떡하냐’ 하는 우려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 안착한 P플랜…스토킹호스 활성화 방안도 마련=법원 제안으로 지난 2016년 도입됐던 사전회생계획안(P플랜) 제도도 최근 시장에 안착한 모습이다. 일반 회생 절차에서는 회생 개시 이후 채권 조사까지 마친 뒤에야 채무자가 회생계획안을 제출한다. 하지만 P플랜에서는 부채의 2분의1이상을 가진 채권자가 채무재조정이나 사업재편 계획을 모두 담아 개시 결정이 나기 전에 제출한다. 채권자 다수와 채무자가 미리 정상화 방향을 합의한 뒤에 법원을 찾는 셈인데, 회생절차 이후 새로 참여할 투자자 입장에서도 검토가 수월하다.

지난 4월 법무법인 태평양은 코스닥 상장사 EMW를 자문하면서 P플랜 신청 후 한달 여만에 법원의 인가를 받았다. 회생 사건 중 최단기간 내 인가를 받은 사례다. 태평양의 박현욱 변호사(연수원 21기)는 “법적으로 문제만 없다면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빠르게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회생법원의 시그널이 시장이 전달된 케이스”라고 말했다.

이밖에, 회생기업 M&A에서 조건부 인수인(스토킹호스)으로 나선 외부 투자자에게, 만약 인수 자격을 다른 투자자에 넘겨주게 되더라도 회사측으로부터 그간의 비용 일부를 보전(breakup fee)받을 수 있도록 한 사례도 율촌 자문 건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아직은 ‘재미’ 보기 힘든 시장”=

다양한 제도적 지원에도 구조조정 시장이 투자자들로부터 매력적으로 평가받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고 변호사들은 진단했다. DIP파이낸싱과 관련해, 사적 구조조정인 워크아웃 단계에서 이뤄진 신규자금 대출의 경우, 절차가 중단돼 법정관리나 파산 절차로 넘어가면 그간 인정되던 최우선 변제권이 사라진다.

광장의 이완식 변호사는 “워크아웃, 법정관리, 파산 등 3개 절차에서 모두 신규 대출 채권에 대한 최우선 변제권을 인정받아야 대출 투자자들도 부담 없이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M&A 시장의 핵심축으로 등장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가 회생기업 투자에 나설 길이 일부 제한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현재 국내 PEF는 기업에 투자할 때 의결권 주식을 10% 이상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물론 ‘기업재무안정형’으로 설립하면 대출 투자도 가능하지만, 이 경우 투자 대상이 부실징후기업이나 회생·파산신청기업으로 한정된다. 턴어라운드 가능성이 있는 위기의 대기업이 있다 해도, 회생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일반 PEF로서는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서태용 변호사(연수원 30기)는 “PEF 운용사로서는 포트폴리오의 일부를 채권으로 투자해 전략을 다변화하고 싶을 것”이라며 “규제를 개선하는 움직임이 지난 국회 때 있었으나, 회기종료로 자동 폐기된 이후 아직까지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최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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