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과거시험 낙방이 대수랴…괴산 절경 ‘진짜 관광’을 하였으니…”
라이프| 2020-09-22 11:24
과객들이 조령을 넘기전 감탄하던 수옥폭포
산막이옛길은 충청도 양반길로 이어지는데 그 중심에 연하협 구름다리가 있다.
비오는날 산막이옛길을 걷는 것도 운치있다.
괴산의 청정생태는 달천(괴강)이 매개한다. 조선 중기의 시인 김득신은 ‘괴강에 머문지 4년이 넘는데, 철에 따라 경물로 시를 지으니 시 주머니가 넉넉하네’라는 찬가를 남겼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일깨우고, 이 시국 최고 가치인 ‘자연인’이 되게 한다.

초시에 합격한 과거시험객들은 벼슬길을 여는 ‘복시’를 보러 한양으로 가기 위해 괴산 조령(鳥嶺)을 거친다. ‘새(鳥) 처럼 날아오른다’는 기대감 속에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한양길이었다. 화양구곡에 들러 송시열의 기(氣)를 받든, 선유구곡에서 신선의 영(靈)을 입든, 영·호남 과객들은 수옥폭포가 아름다운 조령으로 모이게 돼 있다.

압권(壓卷)이라 관광(觀光)인데, 괴산 절경을 감상하는 것이 ‘진짜 관광’ 부럽지 않다. ‘압권’은 과거시험 최우수작이 나머지 수십만 답안지를 누르는 형국이고, ‘관광’은 압권을 써낸 장원급제자가 주상의 빛 나는 용안을 쳐다보는 것을 말한다.

▶괴산이 바꾼 ‘관광’의 뜻=관광이 오늘날 여행의 의미로 바뀐 건 순전히 괴산 때문이다. 바늘구멍 벼슬길을 뚫지 못한 낙방자라도 귀향하면 “관광하고 왔다”고 신고했다. 엄청난 양의 불합격 답안지(시권)는 변방 군사, 불우 이웃의 방한복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낙방해도 괴산관광에다 나눔까지 했고, ‘초시’ 명예는 변함 없으니, 장차 심기일전하면 됐지, 후회는 없다.

벼슬길을 뚫은 사람도 말년에 이곳으로 귀촌한다. 송시열,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조부 홍승목, 독서왕으로 불리는 17세기 학자 김득신 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16세기 대윤-소윤 싸움의 희생양인 영의정 노수신은 괴산 유배왔다가 그만, 힐링하고 만다. 퇴계 이황은 ‘괴산서 열달 살기’를 시도한다.

산촌 사람과 상인이 토산품을 내다팔기 위해 넘고 또 넘으며 기막힌 절경에 고단함을 잊던 ‘괴산 산막이길’에다 ‘충청도양반길’을 이어붙이는 게 이상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괴산의 명소들 엮은 85㎞ 코스가 충청도양반길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다.

달천, 화양, 선유, 쌍곡, 소금강, 수옥, 갈론구곡 등 괴산의 청정 자연은 그야말로 거리를 두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생태관광지의 전형이다.

▶강소형 잠재관광지, 거리두기 수간모옥 갈론구곡=왠지 갈리아군단이 놀았을 것 같은 곳, 노론-소론-당론-이론 다 필요없이 갈 길 멋대로 갈 사람들의 은둔지일 것 같은 곳, ‘갈론’ 구곡은 요즘 괴산에서 새로 주목받는 수간모옥이다. 연하협구름다리, 선유대 초입까지 이어지는 충청도양반길의 중심지이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는 이곳을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했다.

이조참판 홍승목 등이 은둔했던 이곳의 초입에는 잠수함을 닮은 산중 거대바위 ‘갈론(갈은)동문’이 박혀있고, 그 아래 계곡은 조약돌이 훤히 비치는 옥수(玉水)로 가득하다.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 장암석실, 갈천정, 옥류벽, 금병, 구암, 고송유수재, 칠학동천, 선국암으로 가는 2~3㎞ 구간 내내, 물길은 고요하고 물속 풍경이 또렷하다. 한국 최고의 맑은 물이 아닐까 싶다. 옥녀봉 하산길 옆 선국암은 신선이 바둑을 두던 자리. 옥녀계곡은 ‘신선 선’(仙)자 선유대로 이어진다.

청천면의 선유동문,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 은선암 등 선유9곡의 이름은 ‘선유동 아홉달 살기’를 했던 퇴계가 다 지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선유와 화양동을 ‘금강산 남쪽 으뜸가는 산수’라고 적었다.

▶국가명승 화양구곡, 자연과 역사의 긴 호흡= 괴산에 산천경개 좋은 곳이 숱하지만 그 중에서 화양구곡은 맑은 산수, 기암괴석에다 송시열의 자취 등 문화유산까지 풍부하다. 화양구곡의 시작점인 경천벽에서부터 마지막 파천까지 걸어가는 계곡 산책길은 어느 글귀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문장가의 작품 처럼, 허투루 넘어갈 경치가 없다.

하늘을 들어올린다는 경천벽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운영담은 아름다운 구름이 물속에 드리운 곳이라는 뜻이다. 효종의 사망소식에 송시열이 엎드려 울었다는 읍궁암은 반석 위 작은 굴곡이 원인되어 급류가 소용돌이 치는 바람에 구멍이 뚫려있어 이채롭다.

후진을 양성했던 금사담은 역사와 생태가 한 앵글에 담기는 인생샷 지점이다. 제5곡의 개천변 7부능성엔 큰 돌들이 겹쳐져 놓여있는데, 첨성대라 부른다. 첨석대가 바른 표기인듯 하다.

‘화려한 빛’ 화양 절경은 주름 많은 노승을 닮은 능운대, 와룡암과 학소대, 파천(파곶)까지 이어진다. 조물주는 파천의 넓은 반석 사이사이에 물이 흐르도록 해 여행자가 시원하게 쉬도록 했다. 계곡 산책로는 완만한데다 3.1㎞에 불과해 미음완보, 정담산책하기에 좋다.

▶산막이를 탐험하는 세가지 방법= 산막이를 막은 산은 국사봉, 등잔봉, 천장봉, 삼성봉인데, S라인 휘돌아가는 달천 중 한반도지형 사진을 가장 잘 찍을만한 곳에 한반도전망대를 만들었다. 건너편으로 군자산과 괴산호를 바라보며 걷는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능선 고도, 백성들이 흔히 다녔던 산막이 옛길, 뱃길, 이 세 가지 모두 운치가 있다. 옛길 산책도 좋지만, 난코스라도 전망이 좋은 2~3시간짜리 등산 & 능선타기가 더 오래남을 듯 하다. 등잔봉으로 올랐다가 천장봉에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리지를 지나 ‘푸르름을 두르고 있는 정자’인 환벽정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초, 구절초 말고도, ‘산양의 수염’이라 불리는 눈개승마, ‘영혼의 꽃’ 홀아비꽃대, ‘꽃계의 무지개’라는 별칭의 노랑무늬붓꽃 등 특이한 야생화가 산막이 옛길 주변을 장식한다.

산막이길 인근 칠성면의 쌍곡구곡은 쌍벽, 용소, 쌍곡폭포, 선녀탕, 장암(마당바위) 등도 멋지지만 장가계의 한부분을 옮겨 놓은 듯한 소금강이 백미다. 퇴계와 송강이 즐겼다는 쌍곡구곡 탐방은 칠보산 트레킹과 겹치는데, 군자산, 보배산, 비학산의 풍경도 함께 본다. 출발점은 호롱소인데, 계곡물 급커브에 소가 생겼고, 그옆에 호롱불처럼 생긴 큰 바위가 지킨다.

괴강이 연결한 괴산 청정생태 클러스터 북쪽에 중대장 처럼 괴강국민여가캠핑장이 생겼다. 일반 텐트는 물론 오토캠핑, 캐라반, 대형텐트 수십개를 칠 수 있고, 놀이쉼터, 체육시설, 달천변 오천자전거길까지, 캠핑장만 가도 웬만한 생태여행이 되도록 꾸몄다.

▶자연인이 득세하는 이 시국, 괴산은 압권= ‘괴강(달천)에 머문지 4년이 넘는데, 철에 따라 경물로 시를 지으니 시 주머니가 넉넉하네. 명성을 다투고 이익을 탐함은 내 일이 아니니, 괴강에 돌아가 모래밭에 앉아 낚시질 하리.’(김득신)

무위자연(無爲自然),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괴산이 일신우일신 세련돼 지는 모습은 자연과 사람의 교감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는 좋은 사람이 나고, 자연 닮은 사람들이 찾게 마련이다. 자연인이 될수록 좋은 이 시국, 괴산에 ‘압권’이 있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