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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폭풍을 순풍으로 만드는 방법
뉴스종합| 2020-10-13 11:39

여름이 끝날 무렵 평소처럼 신문을 넘기던 중 유독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미국 최대 석유회사 엑손모빌이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에서 퇴출된다는 내용이었다. ‘다우지수’는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30개 우량 기업을 대상으로 산출되는 주가지수다. 여기에 포함되는 기업은 미국을 대표한다는 명예를 얻는 반면, 제외되는 기업은 반대의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 일을 단순히 한 기업의 퇴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저물어가는 석유산업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많다.

엑손모빌은 1870년 설립된 석유회사로, 오랜 기간 미국의 대표 기업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100년이 넘는 기간 미국의 석유산업을 이끌며 몸집을 키워왔고, 세계 경제의 석유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의 위상도 얻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석유 수요가 급증하며 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들자 매출과 이익이 크게 뛰었고, 2007년에는 마침내 뉴욕증시 시가총액 1위 자리를 거머쥐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엑손모빌에도 시련이 닥쳤다. 석유산업이 가라앉은 탓도 있지만 석유의존도가 내려가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있음을 간과하고 전통적인 원유 시추를 고집한 것이 화근이 됐다. 환경 규제가 강화될수록 화석 원료가 설 곳이 좁아졌고, 기술발전에 따른 셰일 혁명과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석유 고갈 우려도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전기차·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산업의 부상이 석유 수요 감소를 부채질한 데다 예고 없던 코로나19는 결정타가 됐다. 석유 가격이 급락하며 올 상반기 적자로 돌아섰다.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과거 전략에 매달린 대가는 컸다.

지금 우리 기업들은 엑손모빌보다 훨씬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더 빠르고 폭넓은 변화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팬데믹 이전의 가치사슬이 흔들리고 당연했던 일상마저 어려워졌다. 크게 달라진 경영환경에 기업마다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불확실성이 큰 만큼 고민이 깊다. 엑손모빌 대신 다우지수에 편입된 기업은 클라우드컴퓨팅 등 업종에 속한 테크기업이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여기에 숨어 있다.

디지털 혁신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미 오프라인 소비 대신 온라인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디지털경제 전환도 빨라지고 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화상회의나 온라인수업이 벌써 자리를 잡았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진보가 전자상거래나 클라우드 서비스기업의 성장을 더욱 가파르게 하고 있다. 앞으로 빅데이터·5G·AI 등 첨단 기술에서 앞선 기업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국가가 디지털경제 전환에 힘을 쏟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디지털 혁신은 무역보험에도 적용된다. 우선 해외 바이어 결제정보를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보고서가 출간을 앞두고 있다. 미국·중국 등 39개국, 휴대전화·디스플레이 등 78개 업종에 걸친 총 270만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국가나 업종에 따른 결제조건, 연체정보를 추출해냈다. 바이어와의 협상이나 위험관리에 활용할 수 있어 수출기업이 옆에 두고 볼 유용한 참고서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온라인 다이렉트 보험·보증’도 올해 말 선보일 계획이다. 종이와 방문이 필수였던 과거 심사 방식에서 벗어나 신청부터 가입까지 모든 과정을 온라인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구현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모바일용 시스템까지 구축되면 본격적인 ‘디지털 무역보험’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로부터 시작된 변화의 바람이 매섭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낯설고 힘들지만 에너지산업의 변화에 무심했던 엑손모빌의 사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은 감당하기 쉽지 않은 거센 폭풍이지만 디지털 혁신을 발판으로 한 계단 높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품은 순풍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인호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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