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미 경찰, 의사당 폭동 전 군·FBI 지원 거절 '미스터리'
뉴스종합| 2021-01-08 19:20
미 의회 경찰이 미 의사당 폭동 다음날인 7일(현지시간) 미 의사당 상원 회의장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다.[EPA]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미국 의회 경찰이 지난 6일(현지시간) 발생한 도널드 트럼프 지지 시위대의 의사당 폭동 전 미 국방부와 법무부의 거듭된 병력 및 수사력 지원 의사를 두 번이나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8일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미 의회 경찰에게 병력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의사당 폭동 3일 전인 지난 3일 거절당했고, 폭동 당일인 6일 미 법무부가 산하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을 보내겠다고 미 의회 경찰에게 연락했지만 경찰 측이 또 거절했다.

케네스 라푸아노 미 국토안보부 부장관에 따르면, 무리엘 바우저 워싱턴DC 시장은 이미 몇 주에 걸쳐 위험이 임박했다며 경고 메시지를 발신해왔고, 12월 31일 주방위군 병력 배치를 요청했다. 미 국방부가 지원 의사를 미 의회 경찰에 알렸지만, 3일 의회 경찰이 이를 최종 거절했다.

라푸아노 부장관은 "국방부는 한 번 이상 병력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경찰 측에서 1월 3일 국방부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거라는 답변이 왔다"고 말했다.

이어 미 법무부가 시위에서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며 FBI 수사인력 배치 의사를 밝혔으나, 경찰은 이마저 듣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트럼프 지지자들의 무력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진 가운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많은 인원을 배치해 대비할 수 있었지만, 시위대의 자유 연설에 대응하는 수준으로 시위 준비를 했다고 AP는 전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미 의사당이 한때 시위대들에게 점령당했다. 미 연방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운영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법 집행기관 요원들은 이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무법천지가 된 미 의사당 장면은 여러 면에서 미 당국에 숙제를 남겼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재발할 경우 미 의사당 보안을 어느 수준으로 유지할 것인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주도한 흑인들을 과격하게 진압했던 미 경찰이 백인이 주도한 이번 사태에서는 왜 필요 이상으로 온건하게 대응했는지 등에 대한 논란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미 의회 경찰 지도부의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트 아세베도 휴스턴 경찰청장은 "이번 사태는 사전 준비를 하지 못한 결과이고, 그 잘못은 온전히 경찰 지도부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과잉진압해 사망에 이르게 한 이른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연쇄적으로 발생한 시위 진압에 참여한 바 있다.

아세베도 청장은 과거 미 의사당 주변에서 이번 사태보다 훨씬 높은 담장을 설치하고 보안검색을 철저하게 시행했는데도 경찰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면서 "의회 경찰은 훨씬 더 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들이 6일(현지시간) 경찰 제지를 뚫고 미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자유롭게 사진을 찍거나 미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EPA]

라이언 매카시 미 육군성 장관은 "당시 의회에서 폭동이 일어났지만, 의회 경찰은 통제불능에 빠진 게 분명했다"면서 "경찰이 국방부의 지원 의사도 거절한 마당에 만약 상황이 악화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위기대처 방안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경찰 책임자인 스티븐 선드 국장은 이번 폭동 사태에 책임을 지고 8일 사퇴했다.

이에 대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경찰의 최상위층 지도부의 잘못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미 상원과 하원의 경찰 책임자도 모두 물러났다.

미니애폴리스 시민 42만명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 인력은 840명인데, 미 의회에는 435명의 하원의원과 100명의 상원의원 및 보좌관 등을 지키기 위해 2300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다고 AP는 전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를 수사했던 에드 데이비스 전 보스턴 경찰청 자문위원은 "의회 경찰의 현장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다"면서 "폭동이 일어나기 전 지도부의 준비 단계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맥카시 육군성 장관은 미 수사기관 정보를 종합하면 당시 폭동에 참여한 인원은 최소 2000명에서 많게는 8만명까지 추산된다고 밝혔다.

의회 경찰은 당일 의사당 주변에 제지선을 설치하지 않았고, 의원들이 출입하는 의사당 출구에만 경찰력을 집중했다. 바리케이드도 의사당 앞에만 설치됐고, 경찰은 바리케이드에서 물러나 있었다. 시위대는 이 틈을 파고들었다. 의원들은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의사일정을 시작해 토론을 벌이던 중 부랴부랴 긴급대피에 나섰다.

이러한 대책 부재로 현장 경찰관 전원이 인력 및 장비 지원 없이 몇 시간을 버텨야 했다.

구스 파파타나시우 의회 경찰조합 대표는 "시위대들이 총이나 폭발물로 무장하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라면서 "운이 좋아 사상자가 이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희생된 의회 경찰은 1명이다. 그 외 시위대 인원 4명이 숨졌다.

지난 8일 의회 경찰 1명이 6일 의사당 폭동 당시 입은 부상으로 사망하면서 이번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총 5명이 됐다. 여성 1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이어 3명이 '응급 상황'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52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 여럿도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부상 당했다.

sooha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