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돈 빌리면 투기꾼 취급…저소득자 대출 막히나?
뉴스종합| 2021-01-20 11:34

금융위원회가 사상초유의 고액 신용대출의 원리금 동시상환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차주들의 현금흐름 부담이 폭발적으로 커져 사실상 신용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규제전 미리 신용대출을 최대한 받아 놓고, 규제 후에는 마이너스 통장이나 쪼개기 대출로 우회할 것이라는 관측도 벌써부터 나온다.

금융위는 올해 업무계획 중 하나로 고액 신용대출의 원금 분할상환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외국은 신용대출이 엄격하게 실행되는데 우리나라는 쉽게 이뤄져왔기 때문에 자기 상환능력에 맞게 대출받을 필요가 있다”라며 “분할상환의 기준이 되는 대출 금액이나 분할상환 주기 등 구체적인 방식은 차주의 부담을 고려해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박사는 “원금을 한꺼번에 갚을 경우 못갚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매월 조금씩 갚는 것이 차주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이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분할상환은 신용대출만이 아니라 모든 대출에 대해서 정부가 권장하는 상환 방식이다. 정부는 2016년 주택담보대출의 분할상환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 분할상환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전세대출에 대해서도 분할상환 상품을 출시했다. 논란은 만기가 긴 주택담보 대출이 아니라 만기가 짧은 신용대출에까지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데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로 관리하고 있는데 원금 분할상환까지 강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신용대출 성격 상 자금용도를 ‘빚투’로만 한정지을 수 없고 치료비, 사업자금 등 다양한 수요가 존재하는데, 분할상환을 강제하게 되면 자영업자 등에 불똥이 튈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실제 차주들의 부담은 그야말로 폭증하게 된다. 1억원을 연 3% 금리에 5년 만기로 대출할 경우, 일시상환식으로 하면 매달 25만원씩 갚다가 5년 뒤 1억원을 한꺼번에 갚으면 된다.

반면 분할상환을 하게 되면 1억원을 빌리자 마자 첫달 191만원을 갚고, 5년간 매달 평균 179만원씩 갚아야 한다. 분할상환은 만기에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없는 대신 자금융통 측면에서는 불리하다. 분할상환원금을 내기 위해 추가로 대출을 받는 돌려막기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규제가 나오기 전 미리 고액 대출을 받으려는 ‘막차타기 수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국의 정책방향이 계속해서 대출을 조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금액을, 장기로, 가급적 앞당겨서 대출을 받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대출에 대한 비용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당국이 고액 신용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규제 도입을 발표하자 사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폭증한 바 있다.

분할상환 의무를 적용할 수 없는 마이너스 통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마이너스 통장은 정해진 한도 내에서 수시로 자유롭게 자금을 대출했다 상환할 수 있는 상품이다. 다만 당국이 최근 고액 마이너스 통장을 활용해 빚투에 나서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어 한도가 낮아질 가능성은 존재한다.

규제 기준 이하로 여러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는 쪼개기식 대출도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가령 8000만원 초과 대출에 규제가 적용될 경우 7500만원씩 여러 은행에서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역시 당국의 고액 신용대출 DSR 규제가 있기 때문에 활용 범위가 넓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월소득이 많은 이들만 목돈을 빌릴 수 있는 만큼 오히려 저소득 자영업자들에게 더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 투자가 필요한 저소득자들은 그야말로 모든 돈 줄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훈·서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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