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팔방미인’ 플라즈마…이번엔 식량문제 해결사[미래산업 플러스]
뉴스종합| 2021-02-03 11:42
플라즈마 기술 적용 씨앗 발아 시험 모습.
연구원이 새싹 인삼 생장 연구를 위해 플라즈마 처리된 새싹 인삼을 살펴보고 있다.
플라즈마로 처리된 귀리종자.
신선 농산물 저장용 플라즈마 발생장치.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제공]

#. 2025년 12월 유난히 강한 한파가 몰아닥친 날. A씨는 플라즈마 저장고에서 꺼낸 양파와 감자로 요리를 시작한다. 이들 재료는 6개월 전 저장한 것이지만 바로 수확한 것처럼 높은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플라즈마 기술로 농산물의 숙성과 호흡을 억제해 노화를 방지한 기술 덕분이었다.

플라즈마 기술은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는 핵융합 발전의 핵심기술이다. 물질의 4번째 상태로 알려진 플라즈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환경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쓰임새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농식품 분야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플라즈마가 미래 식량문제 대안으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플라즈마 기술은 종자의 발아·생장 촉진 및 미생물 증진을 가능케 하는 활성 기능을 갖고 있다. 또 미생물 살균, 병해충 방제, 농산물 숙성 억제 등 비활성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이에 농식품 산업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미래 혁신기술로 평가된다.

▶신선 농작물 저장기간 늘린다=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플라즈마기술연구소는 농장에서 식탁에 오르는 농식품 산업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플라즈마 응용기술 개발 연구인 ‘플라즈마 파밍’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플라즈마 기술 기반 스마트 저장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이 기술은 플라즈마의 특성을 활용해 농산물의 살균·소독·세척 등의 전처리를 담당한다. 이와 함께 저장고 내 유해 미생물 살균, 호흡 억제, 숙성억제 등의 기능을 통합제어 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이에 신선 농산물 저장을 위한 종합 관리 시스템으로 활용되고 있다.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플라즈마 기술로 미생물 살균 및 농산물의 호흡과 숙성을 억제하는 친환경 기술이다. 실제 본격적인 농가 보급을 앞두고 있다. 세균, 진균 시험도 통과했다.

김성봉 플라즈마·바이오융합연구부 박사는 “농업과 ICT가 만나 스마트팜으로 진화했듯이 스마트팜에서 생산한 농작물이 플라즈마 스마트저장시스템을 만나면 농업 혁신은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농산물 저장은 식량안보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키워드로 농축수산물이 고객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신선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면서 “반도체부터 의료 등 첨단 산업에서 활약해온 플라즈마 기술을 이용하면 저장의 패러다임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숙성과 호흡억제는 지금까지의 저장시스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창적 기술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농산물의 숙성을 야기하는 주요 물질인 ‘에틸렌’을 선택적으로 흡착하고 이를 플라즈마로 제거하는 플라즈마 촉매 하이브리드 기술을 완성했다. 농산물은 살아있기 때문에 호흡을 하고 이는 농산물의 노화를 촉진시키는데 플라즈마 장치로 발생시킨 일산화질소 기체를 농산물에 적용했을 때 농산물의 호흡량이 감소되는 걸 확인했다. 이후 살균과 숙성억제, 호흡억제 기능을 각각 모듈화해 작물에 따라 맞춤형 제어, 모듈별 독립 제어가 가능한 스마트 자동제어시스템을 구현했다.

지금까지 저온 저장창고의 핵심은 온도와 습도조절이었다. 하지만 이 두 변수의 조절만으로는 미생물에 의한 부패, 숙성 및 호흡을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저온에서도 번식하는 곰팡이와 세균이 있기 때문이고 에틸렌 역시 제거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기존 저온저장의 핵심은 겨울잠에 든 동물이 호흡을 최소화해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온도를 낮춰 농작물의 호흡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일반적인 저온 저장창고의 내부 온도는 약 5℃ 내외로 냉동기 바로 앞에 적재된 농산물은 냉해를 입기 일쑤였고, 특히 더운 여름철 전기세 부담도 컸다. 폭염으로 전기수요가 많을 때는 냉동창고 가동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숙성과 호흡억제 등 변수 조절이 가능한 플라즈마 저장시스템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마트팜 생산 농작물 스마트저장창고서 지킨다=플라즈마 저장시스템이 상용화돼 새로운 농산업 생태계가 탄생하면 농가의 부가가치가 향상되고 유통과 수출 경쟁력도 높아질 전망이다. 핵융합연구원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전북 테크노파크와 플라즈마 스마트 저장시스템 상용화를 위한 실증을 본격 추진 중이다.

세 기관은 스마트 농생명 산업 육성을 위한 플라즈마 활용 기술지원 및 해결방안을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완주군 내 플라즈마-스마트 저장시스템의 실증·운영, 스마트 농생명 산업 정책 협업 및 신규 사업 공동기획 등의 긴밀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진은 농산물마다 생육과 저장의 최적화 조건이 다른 만큼 지속적 실증을 통해 작물별 유통단계까지 고려한 최적의 저장 레시피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실증이 완료되면 완주군의 사례를 바탕으로 전국에 시범사업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김 박사는 “2019년 시작한 실증테스트에서 플라즈마 저장시스템의 성능은 확인했다”면서 “추가 실증과 모듈, 장비, 시스템 테스트를 마치고 올해 본격적으로 상용화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온·습도 등 외부 환경의 영향이 큰 실제 저장창고에서 장시간 안정적인 성능을 구현하는 것은 고도의 플라즈마 기술 덕분”이라면서 “농산물 생산-저장-유통을 연결하는 플라즈마 저장시스템이 꽃피울 미래 농업의 희망을 기대해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플라즈마는 특수한 고유 성질 덕분에 의료 현장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저온 플라즈마 멸균기술은 플라즈마 내부에서 물질의 반응성이 극대화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50℃를 넘지 않는 멸균 챔버 내부에 과산화수소 증기를 주입, 과산화수소를 플라즈마화하는 공정을 통해 미생물의 세포막을 파괴한다. 핵융합연구원의 기술이전을 통해 탄생한 저온 플라즈마 멸균기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 현장에서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구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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